무서워하던 문이 있었다. 일곱살 때인가, 여덟살 때인가. 문의 반절쯤 바깥이 잘 안보이게 만들어진 유리가 끼워져 있었는데 주방에서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현관 문 말고도 집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문이 하나 더 있던 셈이다. 자주는 아니었고 이따금 주방에서 엄마만 이용하셨던 것 같다. 그때는 저녁을 준비하는 어스름이 뭍어나는 시간이었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무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문은 가끔 소리를 전했고 밖이 완전하게 보이지 않는 유리였기 때문에 뭐가 잘 보일듯 말듯했다. 때문에 더 무서워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저녁에 주방문과 나만 놓였다. 엄마는 분주하시고, 아무도 그 문과 싸우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눈을 가늘게, 크게 뜨며 싸웠다. 식탁에 머리를 괴고 바깥..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요새는 잘 읽지 않는다. 예전에는 예전 글을 읽으며 천잰가? 는 아니고, 낄낄거리면서 재밌게 읽었다. 나는 픽션 만들기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있었던 일을 묘사하는 데 그치는데. 그래도 아쉬워서 한 두개는 거짓을 적는다. 언젠가 거의 모든 사실과 한 가지의 거짓을 구분하지 못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게 은유인지, 실제 있는 물건을 말하는 건지도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이런 일이! 그래서 글을 보고, 없는 물건을 이제와 찾으려 한다면. 예전의 나에게는 비웃음을 사게 되겠지만, 그게 예전의 나에게는 대단히 웃기는 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영영 확인할 수 없는 일을 찾으러 들어가는 꼴이 아닌가. 그건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어떤 귀신과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예전에 쓴 글을 ..
언젠가의 회사에는 가까운 곳에 과일가게가 있었다. 외근을 마치고 들어가기 전에 무슨 과일이 있는지 좀 보는 게 일과였다. 그래 봐야 그 작은 가게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아 계절을 말하는 과일을 낯빛을 저기서 여기까지 한 번 둘러보면 끝이었다. 색색 다른 건반을 보듯 저마다 다른 색, 다른 크기의 동그라미들이 누워있는 가판이었다. 햇빛이 좋았던 어느 날, 두꺼운 박스에 한라봉이 소담스럽게 담겨 있던 것을 보았다! 나는 당장 그 한라봉이 되고 싶었다. 울퉁불퉁하지만 둥글게, 자신의 최대한으로 잘 자라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얼굴로 누워있는 게 좋아 보였다. 멀리 살던 연이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한라봉이라니. ㅋㅋㅋ하고 웃는 게 전부였다. 그게 몇 년 전이었다. 셔틀버스에서..
사람을 나누는 데 한 가지 기준만을 들어야 한다면 단연코 춤이 아닐까. 춤. 당신은 춤을 추는 사람인가? 난 춤을 좋아하는 이들의 옆에만 있어도 멀미하는 기분이 든다...혹시 내가 춤을 추는 걸 본적이 있다면(그걸 춤이라고 할 수있다면)아주 드문 이벤트였음을 함께 기억해달라. 길거리에 쿵쿵 울리는 음악은 거의 혐오한다...그 노래가 싫은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 너무나 크게 울리는 그 자체다. 거길 지날 수밖에 없는 데에 한숨이 나온다. 원하지 않는 리듬에 맞춰 걸음하는 듯한 모습이 너무 싫은 사람이다. 게스트 하우스에 이런 애들과 한방을 쓰게 되었다. 춤이 없는 곳이 형벌인 이들이었다. 말과 춤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단연 춤을 선택하고는 골반을 흔들어 대고 깔깔깔 웃을 애들이었다. 춤으로 대화도 할 수..
옛날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진흙이었을 때, 저쪽으로, 저쪽으로, 흘러가려 힘을 풀었던 일이다. 흙이 쌓이고, 거 기서 뼈가 자라던 일이다. 교실 바닥에 깔린 아이가 씨팔 너는 왜 가만히 있어? 왜 아닌 척하고 있어? 나를 보며 악쓰던 일이다. 함께 파먹은 살 속에서 비밀이 커지던 일이다. 내 모양대 로 윤곽이 생기던 일이다. 너, 나 알지? 아니. 너, 다 봤지? 아니. 너는 왜 가만히 있어? 따라오던 비탈이 묻던 일이다. 내가 진흙이었을 때, 태어나지 않으려고 힘을 주던 일이 다. 누가 핏덩이인 나에게 옷을 입혀 놓은 일이다. 씨팔 너는 왜 거기 있어? 왜 살아 있어? 진흙에서 악을 쓰는 그릇을 들어 올리는 일이다. 잠깐 따뜻하게 감싸 쥐는 일이다. 던지려고 양손을 번쩍 드는데 그릇이 묻는 일이다. ..
1.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가끔 저 말을 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2. 전선 거미줄에 붙은 나뭇잎, 그 그늘이 창에서 몹시 흔들리고 있다. 3. 반팔을 입지 않아 긴소매의 셔츠를 사서 두세 번씩 걷는다. 그걸 겉을 때마다 한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체육복 소매를 뒤집으면 늘 하얀 각질이 진을 이뤘다. 털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피부가 부서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매를 뒤집어 털다가 그냥 바로 했다. 안 보이는 쪽으로. 높은 콘크리트 계단에 앉아 있거나 피구를 하러 나갔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게 그냥 나라는 걸 아는 게 중요했다. 나는 정말 빨리 부서지고, 매끈한 살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그런 몸으로 사는 건..
집에서 졸음으로 바깥을 보는 휴일. 넓은 이파리의 나무와 먼 곳의 낡은 아파트, 아파트를 그늘 하는 구름이 보인다. 연보라색 나그랑 티를 입은 여자가 봉지를 들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급한 오르막길을 내려오는 흰색의 자동차도 사라졌다. 집에서 난 창만큼만 이야기가 보이고 사라진다. 그게 좋다. 그 이상은 궁금하지도 않다. 매미가 햇빛을 쪼개지는 소리를 내며 운다. 볕이 깨지는 소리가 있다면 이런 것 같다. 어두워지고 나서도 매미는 우는데, 그때는 별이 깨지는 소리 같다고 생각한다. 잘 운다. 유럽의 가이드 투어가 잘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여행은 무척 고되겠지만. 파리 여행은 이제 2주 정도 남았다. 어제는 자물쇠를 샀다...
수영장에서 씻고 나오면 사람들의 발톱이 잘 보인다. (발톱이라고 부르지도 않는 것 같다) 매니큐어를 칠하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색으로 반짝여 멀리서도 잘 보인다. 모두 색이 다를 때도 있고, 모두 빨강이거나 검은 경우도 흔하다. 색색의 작은 점이 걷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살아있는 발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 같다. 그 발을 보며 아주 어릴 적 엄마에게 매니큐어를 사드린 기억이 났다. 천 원 이천 원 하던 것으로 엄마가 바를 일이 없을 뿐더러 고른 색도 그다지 예쁘지도 않았는데 그걸 엄마는 늘 고맙게 받아 주셨다. 선물하는 입장에서도 늘 쑥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걸 마니또 씨앤에이 같은 데에서 꾸준히 사와서는 엄마에게 드렸다. 한 번이라도 엄마가 화를 냈더라면 그 나이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1. 자주 지나가던 길가에 있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진짜 문을 닫기 전까지도 늘 문이 닫혀 있었던 것 같다. 망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세 달. 우동을 파는 가게였는데 사람이 들어가고 나온 걸 본 적이 없다. 개업할 때 놓였던 화분이 아직 창창할 때 메모가 붙었다. "가게 내 놉니다. 문의 010-0000-0000." 그리고 그 위에 한 줄이 더 있었다. "비법 전수합니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돌리고 앞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다는 듯이. 저 가게는 아마 다른 곳에서도 또 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에도 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가게에 오지 않는지 이유도 모르고 짐을 싸면서, 매직도 아니고 볼펜으로 저걸 쓰면서, 특히 비법 전수 부분에는 밑줄을 두 번이나..
버스가 도착할 무렵의 경주는 버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로보다 낮은 논으로 시작했다. 오월의 논은 못자리가 끝나 물이 찰랑였고, 그 물에 키가 크고 초록이 한창인 나무의 그림자가 선명하다. 버스의 자리가 높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경주의 건물 낮은 시내에 들어서니 도착하기 전 못해도 200미터 쯤에는 내려서 걸어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도시의 격에 맞지 않게 높이 실려왔다는 황망함이었을까. 너르게 펼쳐진 도로에는 그 너머의 너머까지 막힘이 없었다. 높아봐야 3층이었으려나, 막힘없이 저 먼데가 보였다. 건물 사이로 대릉원이 보이는 풍경 옛 시간이 겹쳐지고 보란듯이 살아있는 대릉원에 인접한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골목 사이로 대릉원의 능이 보인다. 골목을 채우는 작은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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