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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주 지나가던 길가에 있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진짜 문을 닫기 전까지도 늘 문이 닫혀 있었던 것 같다. 망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세 달. 우동을 파는 가게였는데 사람이 들어가고 나온 걸 본 적이 없다. 개업할 때 놓였던 화분이 아직 창창할 때 메모가 붙었다. "가게 내 놉니다. 문의 010-0000-0000." 그리고 그 위에 한 줄이 더 있었다. "비법 전수합니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돌리고 앞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다는 듯이. 저 가게는 아마 다른 곳에서도 또 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에도 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가게에 오지 않는지 이유도 모르고 짐을 싸면서, 매직도 아니고 볼펜으로 저걸 쓰면서, 특히 비법 전수 부분에는 밑줄을 두 번이나 그어야 했던 뜻 모를 분노가 전해져 왔다. 나아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아져 본 적이 아마 없었을 것이다.

 

2. 차는 도로에 진입 중이었다.

 

또 어제는 서초였다. 흰색 승용차가 인도에서 도로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인도도 넓찍했고, 도로도 차선이 많은데 비해 교통량이 없어 조금도 복잡할 것이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차 밑이 긁히는 소리가 나며 멈춰 섰다. 알고 보니 인도의 높은 턱을 그냥 내려갔던 거였다. 앞바퀴는 도로에 약간 떠 있었다. 몸체는 아직 인도에 있었고.

 

도로로 진입하게 쉽게 닦아놓은 길과는 10m도 차이나지 않았다. 그 운전자를 아는 사람은 당황해서 그 차를 도우러 뛰어갔다. 진정하라고, 이제 그만 가라고 했을까, 잠시 후, 그 차는 밑이 완전히 닿은 그 상태에서도 앞으로 나가보려고 다시 액셀을 밟았다. 차가 나갈 리가 없었다. 더 나간다면 바닥이 완전히 다 긁혀야 했을 텐데, 두 번째 놀라서 뒤를 돌아보자, 정말로 깜짝 놀란 그 차와 운전자를 아는 사람은 마당발로 뛰어나가 그 차 앞을 가로막았다.

 

3. 아몬드, 땅콩, 컨포도 중에 가장 나중에 남는 것

 

아몬드, 땅콩, 건포도 등을 섞어 파는 과자, 봉지를 잘 안닫아 눅눅한데, 맛없는 것만 남은 것들을 씹으며 더 나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생각했다. 잘 되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되면 제대로 멈추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4. 양상추보다 양배추가 더 비싼 계절

 

"일 년에 몇 번은 양상추보다 양배추가 더 비싼 달이 있어요." 언제나 양상추가 더 비싸다고 생각한 나에게 그는 그런 달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건 양상추와 양배추를 모두 들어보고, 그걸 고심한 사람이 알 수 있는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1년 중 6월임을 오늘 알았다. 양배추 스팸 조림을 하려고 마트에 양배추를 살피니 한 통에 2500원. 나는 저기에서 1/4만 필요한데 가게 두 곳을 돌았지만 모두 한 통을 팔고 있어 그냥 사 왔다. 나오는 길에 양상추를 홀깃 보니, 양배추보다 작았지만 어쨌든 1800원이었다. 이 말을 아직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 그가 그게 1년 중 어떤 달인 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걸 알아버렸네. 

 

사랑했던 대화의 퍼즐이 맞춰져 이제는 혼자 더 궁금해 할 일도 없겠네.  

 

5.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잘한 

 

그에 비하면 그렇게 숱한 대화를 했는데 지문조차 묻지 않는 말뭉치들도 있다. 먼지만도 못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성장하지 않는 나무, 이파리를 본 적 있는지. 죽은 것들만 성장하지 않는다. 죽어버린 관계와 대화가 그렇다. 그때 알지 못했던 건 아니다. 알면서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노력했던 거였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때 헤어진 일이다. 

 

그때 관계가 남긴 유산은 카드 할부 안 쓰는 것. 그 이후로 노트북을 샀을 때 제외하고 할부를 쓴 일이 없다. 

그리고 그때보다 나는 최소 두 배는 더 잘살고 있다. 

 

5.

휴일도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 어디라도 다녀와야 한다는 마음. 다 그만두고 남은 과자를 먹는다. 그 사이에는 소금도 많이 남아서 더 짰다. 갈증이 물로 쉬이 풀리지 않는 계절의 초입. 수박이다. 수박을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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