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후의 글

사랑이 없어도

_봄밤 2019. 4. 14. 22:25

정독도서관에는 벚꽃이 끝없이 날리고 있었다. 아름다워서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바닥을 보아도 수북히, 가볍게 옮겨 다니는 벚꽃이 있어 황홀했다. 이런 풍경에 한 시간이도 두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팥죽도 한 그릇 먹었다. 여전히 그 단맛이 몸에 있는 것 같다. 저녁에는 영화를 보러 갔지, <미성년>을 보고 울다가 웃다가 하고 나왔다. 캐릭터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이야기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극중의 가부장 대원에게는 이렇다할 목소리가 없다. 그의 심경도 나오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모양 나쁘게 도망다니다가 어수룩하게 당한다. 그 자리에 가득 차는 주조연들의 목소리. 

 

정말 좋은 날이었어. 이 얘기를 하려고 오랜만에 들어왔다.

 

스투키 두 개를 화분에 옮겨 심었다. 다음 주에는 물을 주려고 한다. 조금 큰 애의 이름이 구 이고, 작은 애의 이름은 구 이다. 각각 뿔이 9개씩 있다. 집에 돌아오면 높이 올려 놓은 화분 주위에 흙이 떨어져 있다. 까뮈가 흙을 가지고 논다. 까뮈는 흙을 잘 모르니까. 지금 까뮈는 책상 밑의 숨숨집에서 잠을 자는데 이따금 등을 위로 향하면 숨숨집이 까맣게 차고 배를 뒤집으면, 숨숨집은 하얗게 찬다.  

 

사랑하지 않아도 좋구나. 

 

 

 

'이후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나은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  (0) 2019.06.09
작은 여행 경주  (0) 2019.05.06
책상이 오고 있는 일기  (0) 2019.03.05
아치디에서  (0) 2019.01.29
그 차는 세탁소 건물 근처에 자주 서 있었다  (0) 2019.01.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