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민구 여름을 그리려면 종이가 필요해 종이는 물에 녹지 않아야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크거나 훨씬 작을 수도 있다 너무 큰 해변은 완성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은 액자에 걸면 가져가버린다 당신이 조금 느리고 천천히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남은 검은색 파스텔로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다를 그리자 당신의 여름이 기분이거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여행지라면 시원한 문장을 골라서 글로 쓸 수 있는데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뒤에 당신이 나를 기다린다면 좋겠다 파도가 치고 있다 누군가는 고래를 보았다며 사진을 찍거나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겠지만 고래는 너무 커서 밑그림을 그릴 수 없고 모래는 너무 작아서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두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이 오면..
1. 어두운 갈색에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이 색은 마을 입구에서 비를 맞는 장승의 부라린 눈이고, 색색의 줄을 가지마다 걸친 성황당 나무의 단단함이다. 연기가 올라오는 지붕, 낮은 기둥을 이루는 손 때이며 다른 소문이 침범할 수 없는 방 입구의 붉은 글씨다. 지금은 사라진 마을, 그곳에 살았던 이들을 단단히 결속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시작은 달이다. 달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일까. 누구나 달이 있다고 하늘을 가리켜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을 끌어내 '여기 달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달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아닐까 싶다. 달이 있다고 증명해야 하는 것은 과학의 일이 아닌가 하며 어물쩍 물러선다. 그러나 시인은 이지러지는 유약에 묻는다. 수천 ..
문지×아레나 LG서비스 센터에서 문지를 볼 줄이야.근사하다. 쉽게 찢어지는 종이에 단편소설. 손보미-언포게터블 전자 기기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일까. 비치된 잡지는 거의 다 '옴므'였다. 어떤 차가, 어떤 셔츠가, 어떤 카메라가. 그 와중에 전,대,미,문. 백 명의 작가가 한 문장 씩, 모두 백 문장을 썼다. 전대미문前代未聞, 전대미문前代未文 원문은 네이버 캐스트에서 볼 수 있다. 92. 92번째 어둠에서 기다릴 것. 이원(시인) --- 자판을 고쳤다. 모든 글자를 칠 수 있게 됐다. 쓰던 자판은 달라고 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분리된 자판이 새로운 자판을 내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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