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일주일 씩 밀려 썼다. 이건 새로 만든 습관인데, 이걸 지켜온지도 일년이 다 되었다. 하루를 그날에 쓰지 않는 것은 일곱 살 무렵부터 지켜왔던 일탈이다. 밀려가는 하루하루는 아무리 또박또박 써도 뭉게진 글씨로 남았다. 이제는 안다고 해야겠지. 그럼에도 밀린 일기쓰기를 고수했던 것은 아마도 '일기'를 쓴다는 것 보다, '밀린 일기'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주 예전의 날들을 생각나게 하고, 잊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영원히 생각하게 한다. 생각 하는 것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 밀린 일기는 언제나 여름방학이고, 어머니가 곁에 계시고, 아직도 글씨 쓰는 연습을 시키는 큰 칸에 우겨넣는 한 글자다. 쓰는 순간 만큼은 별 걱정없이, 그야말로 일기만을 써야한다는 걱정만으로 있고 싶었던 건가. 밀린..
그동안 글을 잘 못썼는데 이유는 정말로 몸이 좋지 않아서였고, 또 써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다. 나는 무엇을 잘 쓰지는 못해도 늘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러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서 출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조용히 밥을 먹는다. 조용히 아프고,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일년을 지내왔다. 일년은 긴 시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할 사람이 없어도 무엇이라도 좀 적어봤으면 좋겠다. 내가 아프지 않고, 아프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을 쓰게 됨으로 인해 나는 건강하고, 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아니라고 해도 내가 그걸 믿었으면 좋겠다. 진물이 마르고, 반점이 오르고, 진물이 마르고, 그래도 부..
입술 입술 입술 들리지 않지만 말하는 입술 멀리 돌아온 입술 지붕 위에는 따뜻한 모자 춤추는 모자 눈이 감기는 크리스마스를 알려주는 크리스마스 감사해요, 낭만 푸우님. 어제 시킨 귤은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고 동생 선물로 산 버티컬 마우스도 오후에나 출발했다고 했거든요. 띵동, 크리스마스를 알려주는 크리스마스가 도착했습니다. 가 생각났어요. 자기 전에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에 사진을 찍는 일과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삶은, 닮은 것 같아요. 일상을 작품으로 만드는 근사함은 이렇게 좀 비켜난 자리에서 보이지만, 그렇지만, 삶을 작품이라고 제 것을 제 입으로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저 다른 일상을 그리 대할 수 있는 마음을 소망해요. 저는 ..
강남 교보문고 정치사회 베스트 순위. 페미니즘 도서가 순위 중에 4권 포함되어 있다. 포함된 도서는 , , , . 여성학 도서를 사는 이는 서점마다 차이가 있지만, 예외없이 30%이상 20대 여성이 차지한다. 1. 나나의 충격 를 재밌게 보고 있다. 13화쯤 되서 김서형까지 모든 캐릭터가 갑자기 연애 이야기로 얼굴을 붉히길래 좀 시들해졌지만. 진지한 법정드라마이자 일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라는 점에서 매력있다. 캐릭터에 대한 관심은 전도연 - 윤계상 - 유지태로 옮겨가다가 최근 나나로 바뀌었다. 그래서 유지태가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는 것을 알아냈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읊조리던 착한 눈의 사내가 아니라 악역을 더 많이 했다는 것도 알았다. 나나는 차가운 말투지만 어색하지 않고, 극중 ..
비슷한 습도였다. 찬물로 헹구면서 거울을 봤다. 태국, 태국에 가야지. 그 운이 좋았던 여행을 다시 한 번 해야지. 이번엔 치앙마이, 조금 더 서늘한 곳으로. 하루에 칠 천원짜리 방에서 게으르게 여행을 괴로워했던 날들로. 그녀는 스물 두살에 프랑스에 간 적이 있다. 불어를 하나도 못하는 채로 넘어가서 일 년을 살다왔다. 학교를 졸업 한 뒤에는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했다. 이를테면 수유너머 공간에서. 공부보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더 기억에 남았다고 했지만, 그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과의 공부가 없었더라면 술도 없었을 것이다. 언어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공부를 하고 싶고, 유학을 가고 싶고, 언어를 더 배우고 싶다는 건강한 욕망. 부러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궁금해졌다. 계속 궁금했..
#퇴근 길 #버스 #강남만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피곤이 쏟아졌다. 내 앞에는 사십 분째 한 남자다. 검은색 옷에 주황색 풍뎅이 자수가 앞뒤판으로 빼곡한 티를 입었다. 풍뎅이가 꽤나 자세했고, 너무 많아서 조금 이상한 옷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서 그 남자의 팔을 보게 되었는데 털이 아주 많았고 붉은 빛이 돌았다. 그런데 그 털과 풍뎅이 자수는 꽤나 어울리는 것이다. 어울리는 옷을 입었군. 하며 있는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는 외국인이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주황색 풍뎅이 자수, 길고 붉은 털, 파란 눈. 조화롭다. 나는 버스에서 벌써 40분째 서 있는 중이었고, 내리는 사람은 없어도 모든 정차에서 사람들이 올라탔다. 한 이십분 전 자리에 앉으며 얼굴을 보여..
어떤 사진을 보고 있다. 어떤 장면이 사진이 되더니 손에 들렸다. 빛이 잘 들어오는 거실에서 남자와 여자는 적당한 거리다. 앞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여자는 실내인데 양산을 쓰고 있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배는 많이 불러 있었다. 말하자면 만삭 사진이라든지, 그런걸 찍은 것 같다. 어쩌면 진짜 만삭 사진을 찍기 위한 사전 연습인지도 몰랐고, 묻진 않았지만 궁금할 것을 여겼던 남자와 여자에게로부터 왜 집에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궁금하지 않았는데 집요했고, 정당화하는 과정이었고, 그들은 다리를 한쪽씩 들거나 한쪽 팔을 높게 들어올려 대형을 만들었던 이유를 이야기 했다. 웃고 있으면 됐지 싶었다. 얼굴은 거짓이 없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1.이렇게 긴 손가락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주 사라지는 손등과 무너져 내리는 얼굴과. 이 시간을 보느라 눈에 멍이들 착한 애인과. 2.처음에는 사랑했으나 지리멸렬한 사이가 된 연인이 있는데, 헤어지고 나서 사랑했던 여자의 기억이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 그는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애쓴다. 그런데 기억이라는게 가장 최근의 것부터 사라져, 마침내는 그녀를 가장 사랑하기만 했던 때에 닿는다. 그는 그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 없다. 남자는 자신의 다른 기억으로 숨는다.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과 만난 뒤 자살한다. 남자는 그녀와의 행복을 위해 과거를 살짝 바꾸게 되지만 바꾼 과거는 완벽하게 흐르지 않는다. 어딘가의 불행은 주변으로 번진다. 그렇게 과거를 바꾸다가 결국, 남자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가..
네가 태어나서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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