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봤다. 미지는 호수와 동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자신이 언니인 미래(공사 직원)로 바뀌었을 때라는 것을 깨닫는다. 미지(백수)로서는 호수 앞에서 대화는 고사하고 자신의 얼굴로도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호수는 미지가 어떤 것에 뛰어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십대를 지탱해주고 미래를 열어 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 마음은 무척 소중하지만 훗날 호수는 그 마음을 떠나서 살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받은 마음은 소중하지만 그 힘은 이제 자신에게서도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고등학생이 아니다. 호수는 같은 얼굴에서 미지(백수)에게 언니 미래(공사직원)의 가능성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는 미지에게도 미지가 써나갈 '미래'가 필요하다. 생각하기..
5월부터 합기도를 배우고 있다.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처음 해보는 동작을 배우며 익히고 아직까지는 재미있다. 다양한 운동을 하면서 여러 지도자 분들을 만나봤는데 이분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호탕하시다. 그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놀라고, 감탄하고 칭찬하고 이끌어낸다. 앞구르기부터 시작해서 전방-후방-측방 낙법과 앞차기, 옆차기 등을 배우고 7월, 호신술 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가르치신다. 팔은 다치겠지만 죽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발차기를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첫 번째 발차기가 마지막 발차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정확하고 강하게 차세요. 끝까지 보세요 그래야 정확하게 찰 수 있습니다... 등의 가르치는 언어가 흥미롭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
최근에 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최근 흥행한 요리 대결 프로 의 요소가 여기저기 잘 가미되어 있으면서 서울과 지방, 미디어와 대기업,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서울의 푸드 대기업 아들 둘이 가계를 잇기 위해 별을 먼저 따와야 하는 레이스를 달린다. 한식으로 시작한 기업이 쓰리 스타라, 별이 거기 있으니까 따야한다는 심심한 목표다. 이들이 기업을 불린 비결 중 하나는 전국의 맛집 레시피를 빼오면서 원래의 맛집은 망하게 하고, 프랜차이즈화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매우 루틴화 되어 있다. 그 와중에 둘째 아들(강하늘)은 전주의 한 셰프(고민시)의 레시피를 빼올 요량으로 가게에 침투하고, 처음 뜻과 다르게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셰프와 셰프와 함께 하는 가게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는..
올해 첫 참외를 샀다. 누가봐도 그다지 좋지 않은 참외였고 비쌌지만, 당분간 함께 참외를 먹어볼 날은 그 날 밖에 없었으므로 우리 사이에 참외를 놓기 위해서 샀다. 참외가 맛이 없어 보인다는 건 외관을 보고 추측해야 하는, 다소 실망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정말로 참외는 그다지 맛이 없었다. 하지만 참외 모양이었으므로, 참외를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중에 참외를 우물거린 건 나뿐이었고 그마저도 남겼다. 우리에게 가장 좋았던 사이는 서로에게 다르겠지만 내겐 아주 옛날이었고, 그에게는 아직 오지 않았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 얼마나 비어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그러기 위해 얼마나, 서로를 모르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부대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가 생각했다..
꿈에 네가 나왔다 이수명 꿈에 네가 나왔다.네가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왜 누더기를 입고 있니누더기가 되어버렸어날씨가 나쁜 날에는 몸을 똑바로 세울 수 없는 날에는누더기 옷을 꺼내 입는다고 했다. 꿈에 네가 나왔다.꿈속을 네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가서너무 쓸쓸해서 땅에서 돌멩이를 주웠는데빛을 다 잃은 것이었다. 돌벽 앞에 네가 한동안 서 있었다.나는 돌벽이 무너질 것 같다고 피하라고 했는데너는 집을 나와서 천천히 산책 중이라고 했다. 꿈에 네가 나왔다. 아주 짧은 꿈이었다. 이수명, 『도시가스』, 2022, 문학과지성사. --나온 지 좀 된 시집을 올해 샀다. 집에 있는 건가 싶었는데 조금 살펴보는 동안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도 집에 있는 시집은 인 것 같다. 물류 창고는 어..
꿈에서 슬픈 일이 있었다. 어떤 연인이 같이 살기로 했는데, 그중 한 명이 나가서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둘이 기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런 전개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나갔을까? 행복했을까? 남아 있는 사람도 행복했을까? 어떻게 인생을 보내기로 했을까? 둘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떠나고 남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나는 남아있는 사람만큼이나 황망해져서 이후를 궁금해했다. 이런 저런 꿈을 꾸다보니 아침이 되었다. 봄맞이 커튼을 바꿨다. 암막커튼을 떼고 흰색 커튼이다. 살랑살랑하다. 방에 걸려 있는 암막 커튼도 뗐다. 거의 1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방이 한결 환해졌다. 어두워서 그 동안 잘 잤다고 생각한다. 블라인드를 이렇게 저렇게 내려보았다. 재작년인가에 만들었던 2단 서랍장을..
주말 내내 한 카페로 출근하고 있다. 이곳에는 주말마다 비슷한 사람들이 오는데, 어쩌다 한 번씩은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손님도 온다. 어떤 가족이 들어왔다. 함께 어디갈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어째서 이 카페까지 왔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일부러 이 카페에 들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동네 근처에서 가족이 어떤 일을 보기에는... 특색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카페도 특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하여간, 가족은 총 4명이었다. 그중에 나이든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세 잔만 달라며 아무 의자에 앉았다. 방금 밥을 많이 먹고 왔기 때문에 배가 너무 불러. 3잔이면 충분해~ 라고 했다. 그 카페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손바닥 보다 조금 더 컸으므로 곧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점심이 과했음을 ..
보름스는 위니콧의 영향을 받아, 캉길렘의 생명성과 유한성의 양극성에다가 창조와 파괴의 양극성을 추가한다. 보름스는 그의 생기론이 갖는 비판적 특성 때문에 관계를 창조적이거나 지원적인 것으로 보는 만큼 파괴적이거나 지배적인 것으로도 본다. 보름스는 돌봄을 "주체적이고, 나아가 주체성을 창조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런 관계가 없이 우리는 개인이 될 수 없다)라고 정의한다. 돌봄은 도덕적이면서 사회적인 관계이며, 그렇기에 이미 정치적인 관계이다. 즉 돌봄은 세상과의 관계이고, 똑같이 자연적이면서 문화적이고, 생태적이면서 정치적인 세상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그가 돌봄에 대해 발전시킨 사회정치적 사고는 의료 관계나 부모-자식 관계의 틀을 넘어서며, 정의에 관한 새로운 윤리-정치적 성찰을 요청한다. 돌봄은 ..
어제 식당은 무릎께 까지 오는 큰 창이 있어 바깥에 지나는 사람들이 잘 보였고 그들에게 내가 먹는 식사가 잘 보였다. 통창과 인도 사이에 작은 화단이 있어 그곳으로 참새가 자꾸 떨어졌다. 참새는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손톱보다 작은 부리로 화단의 풀과 솔잎 같은 것 사이를 파고들었는데, 그 중에는 제 머리보다 큰 꽃잎을 물고와서 그 안을 쪼았다. 나도 밥 먹고, 너도 밥 먹지. 국수 한 젓가락 먹고 참새를 보고 참새를 보다가 국수 먹었다. 밥먹는 사이 참새가 화단으로 자꾸 떨어졌다. 저것은 이렇게 한 평생 이렇게 부시러기 같은 것을 꼭 한 입씩만 먹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계속 이어져 왔을 참새의 생활을 잠깐 생각하고 어제는 총파업날이었다. 오후 3시에 명동에서 광화문을 걸었다. 같은 조끼를 입은 사람..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내전'이라니,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내전을 상상하지 못한 까닭이다. 부족한 것은 내 상상력이었고, 지금 현실은 이미 상상을 초과한지 오래됐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전쟁의 속성과 계략을 파악하고 어떤 전략으로 대응 할 수 있을지 명확히 알려준다. 이 책의 결론 제목은 '내전에서 혁명으로'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 신자유주의 내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 전쟁은 과두 정치 세력이 앞장서 벌이는 ‘총력전’이다. 이 전쟁은 사회적 권리 축소를 노린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외국인에게서 모든 종류의 시민권을 박탈하고자 하고 망명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민족적이며, 모든 저항과 비판을 억압하고 범죄화하기 위해 법적 수단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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