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공원에 오랜만에 가보았다. 공원에 들어서기만 해도 기온이 2도는 떨어지는 듯 하다. 잘 꾸며진 공원인데 여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물소리와 새소리와 벌레 소리가 컸다. 운동을 하는 사람 몇몇 뿐이라 평상에 누워 있기 좋았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가만 들어보니 그것은 였다. 수풀 안을 살피며 땅바닥쪽으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양말아~ 양말이 어딨니.양말아~ 여기 있니.듣기에 고양이를 이르는 것 같아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를 따라 옆에서 3미터쯤 떨어져 걸었다. 어떤 양말을 신은 고양이인지 궁금해서. 곧 금새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와 걸음걸이가 똑같이 맞춰져 겸연쩍어졌고, 나는 한 발을 기다렸다. 아저씨는 다시 좌우로 양말이를 부르며 공원을 내려갔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처리하고 이해하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다. 위는 종종 필터 없이 보거나 직설적으로 말하며, 쉽게 격한 감정에 휩싸이고, 기이한 행동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의 재능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잘못된 때에 잘못된 말을 하고, 영화의 슬픈 장면에서 웃으며, 중요한 순간마다 계속 질문을 던진다.또 완전한 멜트다운, 즉 자제심을 잃고 정신적 혼란에 빠지는 일을 결코 피할 수없다.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면 윔블던 테니스 결승전을 생각해 보면 된다. 공, 그러니까 내 정신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점점 더 빨라진다 위아래로 좌우로 튕겨 오르며 계속 움직인다. (...) 이렇게 살면 정말 답답하지만,완전히 자유롭기도 ..
피곤으로 동네에 도착할 무렵에는 어떤 시에서 말하듯 배춧잎처럼 추척추척 걷는 느낌이다. 집에 가는 것만으로도 지치는데 기타는 무슨 일인가 싶다. 어깨가 축 쳐져서는 기타를 메고 처럭처럭 가는 길이었다. 어떤 가게 앞에 머리가 귀끝까지 오는 여자와, 볼이 꼭 닮은 아이가 찹쌀 꽈배기 같은 것을 오물오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두상이 잘 드러나는 까까머리가 보송보송했다. 여름이라도 퇴근 무렵에는 바람이 조금 선선해서 앉아있는 모습이 더워보이지 않았고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는 것이 햇빛 사이에서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골목길을 들어가 일을 보고 다시 나왔는데 여전히 그들이 있었다. 아까는 마주보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같은 방향을 보면서 앉아있었다. 그리고 옆모습의 볼이 똑같이..
찰스 테일러가 주장하기로, 인정은 "단순히 타인에게 예의상 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타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핵심적인 인간의 필요'다. 이렇듯 인정은 개개인의 자존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내면의 존엄, 그리고 내면의 가치를 존중받고자 하는 정신적 필요에서 비롯한다. 리처드 세넷은 인정과 존중의 결여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렇게 설명한다. "노골적인 모욕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존중 부족으로 받는 상처는 그와 비슷할 수 있다. 타인을 모욕하지 않지만 인정을 보여주지도 않는 경우, 그 상대는 존재 자체로 온전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인간 존엄과 빈곤에 관한 소논문에서 클레멘스 제드마크는 이처럼 외면당한 타자에게서 '인간적 측면을 보지 못하는 상황'은 빈곤 경험에서 흔하게 나타나며, 이런 상..
21세기 포스트모던 혹은 재귀적 근대의 세계에서는 2차 창작의 가능성을 미리 도입하지 않고는 누구도 원작을 만들 수 없고, 관광객의 시선을 도입하지 않고는 누구도 커뮤니티를 만들 수 없다.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이 책의 관광객론을 구상했다. 2차 창작자는 콘텐츠 세계의 관광객이다. 거꾸로 말하면 관광객은 현실의 2차 창작자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현실에서 사회를 만든다. 달리 말해 누구도 공공성 따위를 갖고 싶어 하지 않지만 누구나 공공성을 갖는다. 나는 이 역설이 모든 인문학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63p 앞서 말했듯이 칸트는 방문할 권리와 손님이 될 권리를 구별한다. 방문권은..
요 며칠 힘들었다. 농구하다가 울 뻔했는데, 농구를 잘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농구가 원하는 수행능력이 없다. 농구는 정말 지적인 운동인데,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농구는 특히나 예측해야 한다. 상대편의 예측을 무용한 것으로 만들고, 우리 편의 예측을 현재로 만드는 운동이다.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면서 패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고, 패스를 받거나 줄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고 누구에게 공을 줘야 할지 모른다. 어디서 공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대신 수비는 끈질긴 데가 있어서 체급 차이가 아주 크지 않는 쉽게 뚫리지 않는데, 상대가 똑똑하게 패스를 하면 수비도 무용지물이다. 존 수비는 그럭저럭 역할이 정해져 있고, 그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게 좋다. 1:1수비도 일단은 명확하다. 상대편 한 사람을 짝..
한편 모든 체내 기관 중 가장 큰 체내 기관은 피부다. 여기서 피부란 촉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피부의 표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도 조절에 필수적인 '피부의 층'을 의미한다. 광범위한 화상으로 목숨을 잃는 이유는 촉각 기능을 잃어서가 아니라 항상성 조절 기능이 심각하게 붕괴하게 때문이다. 피부 기능의 핵심적인 부분은 피부층 전체에 분포하는 수많은 혈관의 지름을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다. 뮤지컬 작곡가인 콜 포터의 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이 말은 상대방에 대한 깊은 그리움 또는 애착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우연히도 이 표현은 피부의 생리학적 의미를 잘 담고 있다. 217p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고현석 옮김, 아르떼 예를 들면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즐거워하면서도 스트레스를 크게 ..
시간의 흐름이 물리학에서 비롯된 것이 맞기는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사물의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할 때 시간의 흐름을 따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통계학이나 열역학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점이 시간의 미스터리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객관적인 '여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주 객관적인 상황에서는 '현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미세한 상호작용들이 하나의 체계[예를 들면 우리 자신]에 의해 시간적인 현상을 발생시키는데, 이때 이 체계는 무수한 변수들의 평균을 통해서만 상호작용을 합니다. 우리의 기억과 의식은 이러한 통계적인 현상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 현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어서 아주 예리한 관..
(...) 일치의 불가능성과 부적합성은 단순히 부정적 개념이 아니라 시간의 통시성 안에 주어진 불일치의 현상 가운데서 의미를 갖는 개념입니다. 시간은 이 불일치가 언제나 있음을, 또한 갈증과 기다림의 관계가 언제나 있음을 뜻합니다. 통시성이 공시성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하고, 가까움이 주어진 사실보다 더 소중하며, 동등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충성이 자기의식보다 더 낫다는 점이 바로 종교의 난점인 동시에 숭고함이지 않겠습니까? 시간은 고립되고 홀로 있는 주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의 관계 자체임을 보여주는 데 이 강의의 목적이 있습니다. 33p 여기서 함께mit 라는 전치사는 관계를 묘사합니다. 어떤 것 주변에서, 공통의 관계항을 중심으로, 나란히 연합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
- Total
- Today
- Yesterday
- 한강
- 배구
- 뮤지컬
- 1월의 산책
- 이병률
- 궁리
- 이영주
- 네모
- 지킬앤하이드
- 이준규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상견니
- 이장욱
- 차가운 사탕들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책리뷰
- 서해문집
- 문태준
- 민구
- 진은영
- 대만
- 정읍
- 이문재
- 김소연
- 피터 판과 친구들
- 현대문학
- 후마니타스
- 희지의 세계
- 일상
- 열린책들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