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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포스트모던 혹은 재귀적 근대의 세계에서는 2차 창작의 가능성을 미리 도입하지 않고는 누구도 원작을 만들 수 없고, 관광객의 시선을 도입하지 않고는 누구도 커뮤니티를 만들 수 없다.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이 책의 관광객론을 구상했다.
2차 창작자는 콘텐츠 세계의 관광객이다. 거꾸로 말하면 관광객은 현실의 2차 창작자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현실에서 사회를 만든다. 달리 말해 누구도 공공성 따위를 갖고 싶어 하지 않지만 누구나 공공성을 갖는다. 나는 이 역설이 모든 인문학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63p
앞서 말했듯이 칸트는 방문할 권리와 손님이 될 권리를 구별한다. 방문권은 상대 국가에 갈 수 있는 권리만을 보장하며, 친구로서 환영받을 권리는 포함하지 않는다. 마치 관광객의 특징을 그대로 기술한 듯한 규정이다. 여행사는 관광객에게 상대 국가에 갈 권리를 보장할 뿐 친구로 환영받는 것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관광을 하는 한 관광객 신변의 안전은 보장되지만 그 이상은 보장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관광객으로 방문한 곳에서 주민에게 비난을 받고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호는 방문 - 관광 업이는 존재할 수 없으나 방문 = 관광이 반드시 우호를 낳는 것은 아니다.
85~86p
아렌트는 활동의 경우 행위자의 고유명성이 결저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았다. 실제로 정치인의 연설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가' 즉 내용보다는 오히려 '누가 그 연설을 하고 있는가' 즉 '얼굴'이 더 중요하다. 다른 한편 노동의 경우에는 얼굴이나 이름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공장 노동자나 아르바이트 점원은 익명의 숫자에 불과하다. 편의점에 상품을 사러갈 때 누가 점원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느 가게에 갈지조차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노동이란 얼굴 없는 '생명력'을 매매하는 것일 뿐이다.
아렌트는 이 대립을 '타자'또는 '공공성' 유무의 대립과 포갠다. 아렌트에 따르면 활동의 장에는 반드시 '타자'가 있다. 청중이 없는 연설은 없으며 봉사 대상과 면식이 없는 봉사자도 없다. 활동의 본질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차이를 인식한 후에 언어적으로 소통하는데 있으므로 반드시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이는 공공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대조적으로 노동하는 공간에는 타자가 없다. 노동의 본질은 인간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 인원과 시간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생명력'을 제공하는 데 있다. 110p
관광객은 이 물음을 던지기에 적합한 주제다. 관광객은 대중이다. 노동자이자 소비자다. 관광객은 사적인 존재고 공적인 역할을 맞고 있지 않다. 관광객은 익명적 존재며 방문한 곳의 주민과 토론하지 않는다. 방문한 곳의 역사에도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관광객은 단지 돈을 쓸 뿐이다. 그리고 국경을 무시하며 지구상을 넘나든다. 친구도 적도 만들지 않는다. 슈미트, 코제브, 아렌트가 '인간이 아닌 것'으로 간주해 사상 바깥으로 쫓아내려 한 거의 모든 성격을 갖추고 있다. 관광객은 20세기 인문 사상 전체의 적이다. 따라서 관광객을 철저히 사유하면 필연적으로 20세기 사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118p
사랑을 확인하지 않은 채 관계를 맺는 것은, 즉 정치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적인 의존 관계를 심화한 것은 경솔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불순한 짓일지도 모른다. 2층 구조의 시대는 그런 의미에서 철저하게 경솔하고 불순한 시대다. 그러나 결국 관계를 끊을 수 없다면 각오를 다지고 사랑을 키워 갈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 관계에서도 국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131p
관광객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논한 것처럼 관광객은 제국 체제와 국민 국가 체제 사이를 왕복하고 사적인 삶을 그대로 공적인 정치에 접속하는 존재를 가리킨다. 이는 네그리와 하트가 제안한 다중 개념과 비슷하다.
다중은 공산주의 몰락 후 반체제 운동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논의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철학 분야에 남겨진 거의 유일한 개념이다.
161p
우리는 타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도 타자에 완전히 개방적이지도 않다. 문제는 타자에 열려 있을 '확률'이다. 확률의 값은 반드시 0과 1사이에 존재한다.
178p
나는 이번 장 앞머리에서 부정신학적 다중이 데모하러 간다면 관광객은 구경하러 가고, 부정신학적 다중이 소통 없이 연대한다면 관광객은 연대 없이 소통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우리가 데모 대신 관광 여행을 떠나 마주치는 사람에게 무작정 말을 걸면 그것이 제국에 대한 저항의 실천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관광객은 보다 복잡한 존재다.
2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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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의 철학은 갈 필요 없는 장소에 가 볼 필요 없는 것을 보고 만날 필요 없는 사람을 만나는 관광이라는 행위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소통의 실패에서 생겨나는 역설적인 소통의 경험, 우연한 마주침을 타고 전파되는 연민이 단절된 세계를 다시 연결한다. 정치철학과 네트워크 이론, 도스토옙스키와 SF소설을 가로지르며 쌓아 올린 논리의 정상에서 우리는 관광객들이 만들어 갈 '우연한 가족'의 형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 아즈마 히로키, 안천 옮김
리시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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