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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테일러가 주장하기로, 인정은 "단순히 타인에게 예의상 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타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핵심적인 인간의 필요'다. 이렇듯 인정은 개개인의 자존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내면의 존엄, 그리고 내면의 가치를 존중받고자 하는 정신적 필요에서 비롯한다. 

 

리처드 세넷은 인정과 존중의 결여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렇게 설명한다. "노골적인 모욕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존중 부족으로 받는 상처는 그와 비슷할 수 있다. 타인을 모욕하지 않지만 인정을 보여주지도 않는 경우, 그 상대는 존재 자체로 온전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인간 존엄과 빈곤에 관한 소논문에서 클레멘스 제드마크는 이처럼 외면당한 타자에게서 '인간적 측면을 보지 못하는 상황'은 빈곤 경험에서 흔하게 나타나며, 이런 상황이 "자존감의 원천인 존엄의 감각을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이는 사이먼 찰스워스가 인용한 어느 정보 제공자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 사람은 자기를 '0'으로 취급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는 그런 경험은 파괴적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보았듯이 빈곤층의 존재가 드러나는 경우는 대체로 부정적인 측면을 조명할 때 뿐이다. 따라서 '지식의 병합'사업 보고서에서는 빈곤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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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스는 자존감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기본적 재화'일 것이라 말했다. 센은 자존감이 핵심적인 기능화라고 판단했으며, 그 중요성은 누스바움이 더욱 깊이 있게 조명했다. 누스바움은 '자존감을 지키고 굴욕당하지 않을 사회적 기반, 타인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을 가능성'을 인간에게 중요한 기능적 역량의 목록에 추가했다. 빈곤 상태로 사는 사람들을 고려한 이 원칙을 지키면 그들이 일상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받는 처우가 달라지고 사회의 여러 조직도 영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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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필립스가 말했듯이, "충분히 부유한 사회인데도 극도의 빈곤을 외면하거나, 자의적으로 한 가지 기술에 다른 기술의 100배에 달하는 임금을 지급한다며, 그 사회는 시민을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153p

 


이 책의 목적에 비추어 중요한 부분은, 그러한 선택이 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결과적, 전략적 의의이다. 예를 들어 임금노동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전략적인 행위주체성이 필요하고, 그 결과 살림을 꾸리는 데 필요한 일상적인 행위주체성이 생긴다. 일상적인 행위주체성은 개인의 생애 경로에서 중요성이 덜하지만, 빈곤을 경험하는 방식을 좌우한다. 또는 개인적인 행위주체성과 정치적이고 시민적인 행위주체성이라는 구별도 가능하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는, 개인적인 행위주체성이란 넓은 범위에서 본 개인의 생계 및 대응 전략('견뎌내기'나 '헤쳐나가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정치적 행위주체성은 저항 행동을, 시민적 행위주체성은 전반적인 변화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대항하기' 또는 '조직화하기')를 동반한다. 165

 

빈곤층을 갉아 대는 공포와 불안은 삶의 핵심 요소들에 대해, 그리고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할 역량이 없다는 데서 발생하는 권력 부재의 결과물로서, 단지 '일상적인 불안정'만이 아니라 심각한 '존재론적 불안정'을 반영한다. ...불안정은 그 자체로 행위주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172

 

실제로 빈곤층이 '부유한 가족들과 비슷하거나 더 치밀하게' 재정을 관리한다고 밝힌 연구가 있다. 그래도, 데이비드 매크론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데 그치는 '무계획자'와 장기적인 전략을 활용해 '꾸려 나가는' '계획자'를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크론은 이 둘 사이가 '아주 미세한 선'을 기준으로 구분되며, 관리 능숙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견뎌내기'만 하는 데도 다소 복잡하고 몸에 깊이 밴 습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생존한다는 것, 부족한 소득을 솜씨 좋게 관리한다는 사실 자체를 만족감과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자체가 개인 자원이 된다. 179

 

빈곤 자체가 사회관계망 형성과 유지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되가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물질적 도움을 구하기도 꺼려질 수 있다. 181

 

더 근본적으로, 특히 극심한 불안정 상태에서 나날이 닥쳐오는 견뎌내기의 부담에 시달리다 보면 미래를 '연 단위가 아니라 시간과 일단위로만' 보게 될 수 있다. 티라도의 표현으로는, "빈곤은 암울하여 멀리 내다볼 능력을 앗아 간다." 

 

"빈곤은 장기적 이익에 '쏟아 낼' 관심이 너무나 부족하고, 자기 통제 '근력'이 한계에 달한 절박한 상태"다. 204

 

이 밖에도 빈곤층이 공유하는 범주 정체성의 발달을 가로막는 수많은 요소가 있으며 이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첫째, '빈민'이라는 범주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정체성의 일부조차 되지 못하거나, 성별, 양육자의 신분, 민족, 연령과 같은 다른 정체성에 비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을 수 있다. 빈곤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를 의미한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 타인(정치인, 전문가, 언론, 연구자)이 부여하는 '빈민'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그 꼬리표 때문에 개인적인 주관과 정체성을 잃는다. 

 

빈곤층은 "자신이 빈곤 상태에 놓인 존재로만 표현되기를 원치 않는다." '빈민'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것을 포함하는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추구할 가능성은 낮다. 210

 

옥스팜은 빈곤을 "기본적 인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자기 삶의 어떠한 측면도 사실상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권력 부재 상태"로 개념화한다. 권력은 개인의 빈곤 경험과 그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245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루스 리스터 지음, 장상미 옮김, 갈라파고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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