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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라떼와 아메리카노

_봄밤 2025. 4. 9. 17:03

주말 내내 한 카페로 출근하고 있다. 이곳에는 주말마다 비슷한 사람들이 오는데, 어쩌다 한 번씩은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손님도 온다.

 

어떤 가족이 들어왔다. 함께 어디갈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어째서 이 카페까지 왔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일부러 이 카페에 들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동네 근처에서 가족이 어떤 일을 보기에는... 특색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카페도 특징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하여간, 가족은 총 4명이었다. 그중에 나이든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세 잔만 달라며 아무 의자에 앉았다. 방금 밥을 많이 먹고 왔기 때문에 배가 너무 불러. 3잔이면 충분해~ 라고 했다. 그 카페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손바닥 보다 조금 더 컸으므로 곧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점심이 과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나이가 많은 여자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세 잔만 시켜. 하나 나눠먹으면 돼. 다 못먹어. 남기면 그것도 낭비지. 순식간에 많은 염려가 들어가 있는 말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틀림이 없었고 4명의 가족은 3인분만 주문해야 할 것 같았다. 카페 주인은 카운터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내 생각엔, 3잔만 주문해도 받아줄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할까? 장성한 아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메뉴를 3개 주문하고 이어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서울에서는 이러면 안돼요. 우리 동네에서나 그러지. 제가 이따 나갈 때 먹을게요. 라고 덧붙였다. 서울에서는 이러면 안된다는 부드러운 말에 나이든 남자와 여자는 작게 뭐가 그러냐 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이라고 말하거나 GPS를 켜지 않고서는 도저히 서울임을 알기 어려운 이 동네에서 그는 '서울'이라는 단어로 부모를 설득했다. 가족이 사는 곳은 어느 지방.서울에서는 그러면 안된다. 서울에 있는 카페 주인은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주문을 드디어 받았고, 이 가족은 노트북을 하고 있는 내 옆에 앉았다. 다른 자리도 있었는데 말이다.  

 

장성한 남자는 누가봐도 집안의 기둥이었다. 나이든 부부의 지원이 그를 기둥으로 만들었을테고, 자랑인 듯 하다. 남자는 커피 3잔을 시키라는 부모를 창피해 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논리 정연한 말을 부드럽게 꺾으며 커피 4잔 주문을 해냈다. 뿐만 아니라 부모 앞에서 어수룩한 자식의 면모도 잘 드러냈다. 실비 청구를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대신 청구해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보험사로부터 받은 돈을 부모에게 이체하려고 했는데, 이것은 부모로부터 자식 걱정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건 원래 니 돈인데 왜 주려고 하느냐. 너는 그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을라고 그러냐! 

 

타박도 부드럽게 받으며 안다 모른다 대답하지 않으며 그것이 사랑의 모습인 양 또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남자는 곧 자신의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한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했다. 말투가 나긋나긋 했기 때문에 그가 회사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바로 알기 어려웠다. 회사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여러가지 비판, 비난, 문제의식들이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나는 바로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아니 그들이 내 옆으로 와 앉았기 때문에 곧 그 남자의 직장 내 암투, 라인, 직속 상사의 기분들, 그리고 그 남자가 준비하고 있는 포트폴리오의 분량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보면 지루한 이야기이지 않나? 가족이라도 나와 하나 상관도 없는.... 그런데 이들 가족은 그것이 곧 제 회사의 일인 양 잘 들어주었다. 추임새를 넣어가며, 그러냐. 그랬냐. 그렇구나. 그러면서 라인을 잘 타서 그곳에 오래 있어야 한다, 라는 말과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해야지, 라는 말을 번갈아 가면서 했는데 이들의 조언은 그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될 것이고, 나이든 여자와 남자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의 장성한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 가족의 투닥거림과 퉁명스러움과 한데 엉겨붙어 뚱땅뚱땅 굴러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가족 하나이야기는 왜 없냐고. 옆에 딸도 장성했는데, 그다지 말이 없었다. 아마도 아직 학생인가 싶고, 이 자리의 주인공은 그 남자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음료가 나왔는데 나이 많은 남자가 왜 내 것은 꽃그림이 없냐고 따졌다. 그가 주문한 메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아, 그건... 그것을 설명하는 일은 어려웠다. 라떼와 아메리카노의 차이를 설명하시오. 이 차이는 카페와 커피가 물처럼 익숙한 장성한 자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인식되는 거였지만 때때로 어쩌다 가끔씩 카페에 들리는 나이든 남자와 여자에게는 낯선 것이기 때문이다. 자가 이건 라떼고, 이건 아메리카노이고, 꽃은 라떼에만 그릴 수 있다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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