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빈 창을 바라본다. 깜빡이는 커서. 열두 시 반인가 한 시까지. 한 두줄 적다가 창을 닫는다. 쓸 말이 없다. 엊그제는 병원을 다녀왔는데, 그가 안다면 '너는 성한 데가 없구나'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한데 없음으로 겨우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어리석은 사람. 내게 손이 없다면 어떻게 손이 아플 수 있겠니.모든 곳이 아프다는 것은 결국 모든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니.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원한다면 모든 곳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오금을 보여주었다. 그건 내가 아주 보여주고 싶었던 오금이었다. 다 나았어. 라고 했다.흉터는 여전했지만 분명히 다 나은 것 같았으므로 그러네. 진짜네. 라고 그는 대답했던 것 같고생각해..
나는 약간 우울한데, 첫째는 시간이 벌써 한 시가 다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때까지 아무것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로, 이런 생활이 길어질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공자는 염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괴롭구나?" 하고, 매우 동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염구의 족제비는 그 목소리를 듣고 급히 머리를 숙였다. 마음속 깊이 어떤 느낌이 그의 가슴에 가득히 흘렀다. 그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듯한 느낌이 되어, 마음껏 응석이라도 부려 보자 생각했다. "예, 괴롭습니다. 왜 저는 솔직한 마음을 열지 못할까요? 언제까지 이래서야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는 데도 결국 헛수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네 마음은 잘 알겠네. 그러나 괴로움은 괴롭지 않은 것보다는 오히려 좋은 것이야. 자네는 자신이 괴..
결혼식엘 갔다. 저번주도, 오늘도. 몇 가지 장면들. 퇴장하는 신랑 신부 뒤로 쏟아지는 반짝이는 폭죽. 어떤 것은 천장의 등에 걸렸고 어떤 것은 신분의 드레스에 걸렸다. 어떤 것은 그들이 지나간 자리 위에 남았고 어떤 것은 공중에 오래 머물렀다. 조명에 반작였고, 앞뒤를 자꾸 바꾸며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눈에 남았다... 식이 끝나고 부부가 된 그들은 홀에 내려와 인사를 했다. 우리가 있던 테이블에서, 신랑은 쭈뼜거리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고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신부가 부탁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신랑은 처음보는 낯선 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알지 못할 지난한 시간들. 연인이 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네게서 이뤄지는 일일 것이다...그랬던 것 ..
유난히 몸이 따뜻하고 잠이 많이 오더라. 어제는 한밤에 야채죽 생각이 나서 왜 야채죽 생각이 날까 생각하니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본죽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걸 내내 보지 않았겠어, 그 때문이구나 생각을 했지. 죽에 들어간 여러가지 재료를 산뜻산뜻 서글서글 그려놓았는데, 표고버섯, 쌀, 파, 당근 그런걸 보다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을 먹고 싶어진거야. 그렇게 오늘에 와서야. 열이 있구나 생각한다. 따뜻하게 도는 열이 나쁘지 않고 덕분에 눈이 크게 떠지지 않지만 원래 큰 눈이 아니잖니. 열이 나는구나. 그래서 몸이 따뜻하다는 말을 쓰고, 그 말을 쓰는 내가 좋아서 망토를 두르고 늘어난 셔츠덕에 무릎도 따뜻하다. 지금은 젊어서 걱정이 없지만 이담에 늙은 내가 가끔 걱정이 되누나. 늙은 나여 미안해. 늙은 ..
동네를 산책하다가 아주 작은 강아지 세 마리를 산책시키는 여자를 보았다. 갈색머리에 주황색 패딩조끼를 입고 있었다. 작은 목줄을 오른 손으로 쥐었다. 강아지들의 걸음은 사람의 것과 달라서 직사각의 구멍이 나 있는 배수구 앞에서도 안절부절했다. 두 세 걸음 앞에서 걷는 여자는 그럴 때마다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점프, 점프, 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 강아지들은 착하게도 그것을 뛰어넘어 다시 종종거렸다. 그러다가 내가 뒤서거니 앞서거니 했나.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왜 산책나온다고 했어. 누군가 같이 산책하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앞으론 나온다고 하지 말아. 힘들게 이게 뭐야. 아마도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같이 산책하기로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나왔나보군. 나는 안나온 사..
동생은 내 말에 힘이 없다고 걱정이다. 요새 언니 안같음 _왜힘도 없고. 예전의 모습이 아니야. _욕이라도 할까?그래 _미친그건 아냐 _왜!상황에 맞지 않아 나 참. 맥락에 맞는 욕을 하란다... 나는 기운이 없는 게 아니란다. 두 번 말해도 그런 언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욕이라도 하라는 동생이 있다. 나는 없는 욕 있는 욕을 좀 해했고, 그 욕을 듣고 기운이 났는지 콘티를 보여줬다. 나는 그 애의 컷과 컷 사이가 좋고, 방심할 때마다 나오는 시 같은 문장이 좋다. 다음 화를 그려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담도, 자신을 믿고 묵묵히 나가는 그 모습이 가장 좋다. 미친 서정이다!
그곳은 옻칠공예가 유명해서 길 종종마다 상이며 농이며 검게 칠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업하시는 분을 뵙고 곁을 허락받고 그 옆에 오래오래 쪼그려 앉아 오래오래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시 가면, 꼭 그곳부터 들려야지. 거기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상 뒤에 숨은 그림자처럼 어른어른 뵈어야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어떤 손으로 칠을 하시는 지, 상과 농은 어떤 색으로 바뀌는지...종내는 그 위로 무엇이 비치기도 할 것인지. 그리고 속초에 가고 싶다. 속초, 라는 발음이 좋다. 말하자마자 사라지는 모양. 화살처럼.
눈이 순해지는 것 같지,열이 내리는 밤은늦아침 석이가 보고싶고 어젯밤 누님, 하고 문자가 왔었다.
죄가 말라가는 가을이다. 밑창의 무늬를 안으며 떨어지는 진흙, 바스러져가는 흙이 내가 걸어 온 자리마다 남겨져 있다. 벗으면 벗어지고 버리면 버려지는 것이라고 이제는 그만 속기를 바라며, 속아주기를 바라며 아니, 거의 빌다시피하며 저녁을 맞는다. 이곳은 아무리 걸어도 하늘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저녁, 큰 공원에 갔었고 그 공원에서는 별이 모두 지상에 내려온 듯 반짝였다. 걷는 길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숲마저 밝을까봐. 없어도 자리가 환했다. 어제부터는 아랫니 두 개가 간지럽다. 이가 나는 자리처럼 간지러운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껏 사랑했던 기억을 액자에 걸었다. 나를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모눈의 줄처럼 촘촘하게 쳐졌고 그날을 상영했다. 거짓말쟁이. 저는 평생 살면서 모든 종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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