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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야채죽

_봄밤 2014. 10. 23. 22:51




유난히 몸이 따뜻하고 잠이 많이 오더라. 어제는 한밤에 야채죽 생각이 나서 왜 야채죽 생각이 날까 생각하니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본죽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걸 내내 보지 않았겠어, 그 때문이구나 생각을 했지. 죽에 들어간 여러가지 재료를 산뜻산뜻 서글서글 그려놓았는데, 표고버섯, 쌀, 파, 당근 그런걸 보다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죽을 먹고 싶어진거야. 그렇게 오늘에 와서야. 열이 있구나 생각한다. 따뜻하게 도는 열이 나쁘지 않고 덕분에 눈이 크게 떠지지 않지만 원래 큰 눈이 아니잖니. 열이 나는구나. 그래서 몸이 따뜻하다는 말을 쓰고, 그 말을 쓰는 내가 좋아서 망토를 두르고 늘어난 셔츠덕에 무릎도 따뜻하다. 


 지금은 젊어서 걱정이 없지만 이담에 늙은 내가 가끔 걱정이 되누나. 늙은 나여 미안해. 늙은 내가 지금 나를 본다면 좀 원망을 하겠지만 이해도 해주리라 믿으이. 지금 니가 있는 생을 마구 즐기렴. 그렇게 말해주지 않을까 하고. 내가 이후의 나를 걱정하지 않듯, 할머니인 나도 내 전을 걱정하지 않고, 내가 그저 매일매일을 열심히 지내왔던 것을 내 이전의 날들에게서 알고 있듯이, 이후의 나도 그렇게 나를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조금 두렵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하루에 두 시간이나 세 시간은 십 년이 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고 싶다. 미온이 도는 것처럼 따뜻한 글을 쓰고 싶고, 그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그림도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얼마 안되는 이들을 좀 웃겨주고 싶다. 동생들이 마음 놓고 외롭지 않게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은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계절이 오면 옷을 사러가는 생활을 하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 입가에 작게 맺혔던 딱지가 아직도 붉은지, 아버지 무뚝뚝한 얼굴에서 피는 웃음이 얼마나 크고 밝은지. 오래 생각하고 많이 기억하는 내가 되고 싶다. 겨울이 오면 좋은 건 딱 하나. 엄니 아부지가 집에 계시는 시간이 길어진다. 따뜻하고, 시간이 많은 고향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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