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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산책하다가 아주 작은 강아지 세 마리를 산책시키는 여자를 보았다. 갈색머리에 주황색 패딩조끼를 입고 있었다. 작은 목줄을 오른 손으로 쥐었다. 강아지들의 걸음은 사람의 것과 달라서 직사각의 구멍이 나 있는 배수구 앞에서도 안절부절했다. 두 세 걸음 앞에서 걷는 여자는 그럴 때마다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점프, 점프, 같은 말을 했다. 그러면 강아지들은 착하게도 그것을 뛰어넘어 다시 종종거렸다. 그러다가 내가 뒤서거니 앞서거니 했나.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왜 산책나온다고 했어. 누군가 같이 산책하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앞으론 나온다고 하지 말아. 힘들게 이게 뭐야. 아마도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같이 산책하기로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나왔나보군. 나는 안나온 사람의 핑계를 좀 생각해 보다가 다시 뒤서거나 앞서거나 해서 그 여자 뒷모습을 보게 됐다. 그런데 강아지가 한 마리가 없어진게 아닌가! 두 마리만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여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게 뭐야, 나 힘들잖아. 여자의 패딩에 가려져 강아지 꼬리가 보였다. 그 품에 한 마리가 안겨 있었고, 그럼 왜 나온다고 했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긴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혹은 머리를 좀 쥐어박으면서 여자는 말을 했다. 강아지에게. 다른 두 마리는 안겨서 걷는 강아지를 좀 보면서 또 고개를 수그려 종종거리며 목줄을 따랐다. 그리고 여자와 두 마리 강아지는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나는 대수롭지 않는 안부를 전하는 통화가 부러웠던 참이었다. 그런데 강아지와 대화하고 있을줄이야. 그렇다고 강아지와 말을 나누는 것을 흉보려고 한 말은 아니다. 세상에는 대화가 많고, 나는 그날 불이 여러개인 곳을 지나 그림자 목이 가늘었고 어깨가 반듯했다. 그걸 좀 보면서 걸었다. 표정이 없는 그림자는 의연했다. 이런 대화도 있다.
일요일 저녁 여덟시 반에 차려입은 옷으로 밖을 나서는 4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도착할 곳을 생각해 본다.
흰색 민소매 셔츠를 입고 문간에 나오셔서 멀리 쳐다 볼 수 도 없는 골목 반대편 집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두 분 계셨다. 담배를 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좀 멍한 눈으로 밖을 좀 바라보셨다. 민자로 둥글게 수그러든 어깨, 늘어난 흰색 셔츠. 아직 추운 계절은 아니다.
어떤 친구가 이번에 욕지도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그 일이 무엇인지, 욕지도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욕지도라는 이름을 듣고 언젠가 봄 통영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한산도에 도착하면 입장객을 위한 안내소가 있는데 등산복차림으로 일을 하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그날 입장객은 세 시간 만큼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안내소의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가늠 할 수 없다. 섬에서 나오는 마지막 배를 타기 전에 물을 먹으려고 그곳에 한 번 들어갔었다. 물을 몇 모금 먹다가 핸드폰 충전도 부탁했다. 여자는 온통 새하얀 실내의 한 쪽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안내소를 나와서 불과 몇 십미터 떨어진 바다를 보았다. 뒤로는 산이 있고, 산책로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활터가 있다. 그곳에서 글을 쓴다면 좋겠네. 라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가 아니라 욕지도라는 섬 이야기를 들은 방금 전이었다. 여자와 나는 그날 마지막 배를 타고 함께 섬에서 나왔다.
그때 두 번째로 기억남는 것은 배표를 사기 위해 들른 작은 슈퍼였다. 슈퍼를 운영하는 아저씨는 대나무로 고추 말뚝을 만들고 계셨다. 나는 평상에 앉아서 아저씨가 대나무 끝을 다듬는 것을 오래 보았다. 불필요한 힘이 없는 정갈한 도끼질이었다. 두 번이나 많아도 세 번 툭, 툭 쳐서 한 쪽을 날카롭게 벼렸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가끔 아저씨는 대나무를 들어서 이리저리 보았다. 잘생긴 대나무였다. 고추말뚝이 아니라면 내내 더 클 수도 있었을텐데. 탈이 나지 않는다면 매해 고추를 잘 붙들어 줄 것이다. 이 멀고 먼 곳에도 고추가 익어간다.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받는 매운 고추가. 지천으로 무엇을 '쓰고' 있을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그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말이다. 그때 돌아와서 나는 고추말뚝 이야기를 아버지께 했다. 어떤 섬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고추를 심더라. 하는 이야기였다. 고추는 같은 태양에 마른다. 아버지는 그러냐. 하는 표정셨다. 더 말씀이 있으셨겠지만 하지 않았다.
유빈이가 좋아하는 생선은 박대라고 한다. 박대를 좋아하는구나. 박대. 나는 박대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군산에서 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한다. 유빈이가 박대를 좋아하기까지 시간을 눈감아 생각해보았다. 그날, 전화를 받으며 울먹거렸던 시간, 나는 발을 황토흙 사이로 쑥쑥 빠뜨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걸었다. 목에 걸린 두 대의 카메라가 무거웠고 나를 찾는 소리가 있었을테지만 덕분에 어르신들은 좀 쉬셨을 것이다. 그렇게 삼십분 쯤. 우는 소리에 혼선을 일으키지 않는 기특한 전화가 끊겼다. 축하한다는 목소리가 어째서 울음으로부터 나왔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유빈이가 박대를 좋아할지 전혀 몰랐던 날들이었음을 떠올린다. 그러니. 유빈이가 앞으로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 네가 자주 적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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