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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죄가 말라가는 가을

_봄밤 2014. 9. 14. 19:28




죄가 말라가는 가을이다. 


밑창의 무늬를 안으며 떨어지는 진흙, 바스러져가는 흙이 내가 걸어 온 자리마다 남겨져 있다. 벗으면 벗어지고 버리면 버려지는 것이라고 이제는 그만 속기를 바라며, 속아주기를 바라며 아니, 거의 빌다시피하며 저녁을 맞는다. 이곳은 아무리 걸어도 하늘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저녁, 큰 공원에 갔었고 그 공원에서는 별이 모두 지상에 내려온 듯 반짝였다. 걷는 길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숲마저 밝을까봐. 없어도 자리가 환했다.   


어제부터는 아랫니 두 개가 간지럽다. 이가 나는 자리처럼 간지러운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껏 사랑했던 기억을 액자에 걸었다. 나를 보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모눈의 줄처럼 촘촘하게 쳐졌고 그날을 상영했다.




거짓말쟁이. 저는 평생 살면서 모든 종류의 거짓말쟁이들을 보았지만, 세상에. 사샤 같은 이런 거짓말쟁이는 아직 본 적이 없어요. 믿을 수 있는 거짓말쟁이. 거짓말하지 않는 거짓말쟁이. 누구 커피 더 할 사람? 

p. 259 아모스 오즈, 『여자를 안다는 것』, 열린책들



거짓말하지 않는 거짓말쟁이. 


진은영의 시집을 읽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잠이 들 수 있겠니? 그런 시집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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