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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도착할 무렵의 경주는 버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로보다 낮은 논으로 시작했다. 오월의 논은 못자리가 끝나 물이 찰랑였고, 그 물에 키가 크고 초록이 한창인 나무의 그림자가 선명하다. 버스의 자리가 높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경주의 건물 낮은 시내에 들어서니 도착하기 전 못해도 200미터 쯤에는 내려서 걸어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도시의 격에 맞지 않게 높이 실려왔다는 황망함이었을까. 너르게 펼쳐진 도로에는 그 너머의 너머까지 막힘이 없었다. 높아봐야 3층이었으려나, 막힘없이 저 먼데가 보였다.
건물 사이로 대릉원이 보이는 풍경
옛 시간이 겹쳐지고
보란듯이 살아있는
대릉원에 인접한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면 골목 사이로 대릉원의 능이 보인다. 골목을 채우는 작은 동산, 죽었지만 가장 강렬하게 살아있는 표지가 건물과 건물 사이로 크게 지나간다. 길 이름과 주변의 학교 이름이 경주의 역사를 그대로 가져가,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저도 모르는 새 생겨난 자부심 같은 게, 단단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주는 무엇보다 숲의 수도인데, 도시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자랄 수 있을만큼 힘껏 뻗어난 나무가 잘 마련된 정비 구역 안에 자유롭다. 그마저도 식재한 것이겠지만, 이렇게 큰 나무와 평지라니, 경주의 역사를 돌본다는 일의 절반은 이 녹색을 가꾼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밤의 월지는 연못을 채운 불이 황금으로 빛나 장엄을 더하지만 당시의 월지는 이렇게 황금빛, 오색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당시를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 비워놓을 수 밖에 없는 어떤 것을 이렇게나마 채워, 위엄을 가져온다. 월지를 걸으면 재미있게도, 엄중하게도 그 밤중에 관리소에서 마이크로 공지한다. 잔디를 밟지 마세요, 구역 안에 들어가지 마세요. 이들의 임부의 얼마간은 이 보기 드문 초록의 공간을 지키는 것이리라.
폐허로 바닥을 보이는 월성의 숲도
아름다워서
월성 발굴현장에는 우연히 도착했다. 그날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발굴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조망대를 마련해 놓았고 시간마다 정해서 발굴 현장 소개도 한다고 표지되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발굴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일이 더 추가된 것일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낮의 뜨거운 더위에 차양막도 없이 작게 앉아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두 배로 힘들어보였다. 그들 중에는, 언젠가의 나와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이 있어 도면을 잡고 있었다. 언젠가의 나였던 것처럼 방안에 그날의 돌을 옮겨 그리는 사람이. 조망대에 조심스럽게 올라갔다가 발굴현장 바로 이어진 산에 올라갔다. 산이라고 할 수 없는 약간의 오르막인데, 잘 조림된 나무들이 발굴 현장을 굽어보았다. 저 사람들은 참시간에 여기와서 쉬겠구나.
폐허로 바닥을 내보이고 있는 월성을 두른, 아마도 발굴 때문에 잘려나간 산이 이럴진데, 계림에서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다는 설화는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숲에서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내려온 햇빛의 창살을 보는 일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만큼 신비로움을 가득 간직한 숲이 경주의 곳곳에 있었다.
문무대왕릉에 다녀온 이야기는
자세히 쓰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터미널에서 40~50분 간격으로 문무대왕릉 가는 버스가 있다. 나는 좀 특별한 곳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이곳을 가려고 했다. 불국사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고, 언젠가 템플스테이로 알아봤던 골굴사도 정말 멀리 있었다. 숲의 도시에서 물을 보려고 하니 문무대왕릉과 보문단지가 남았는데 조금 더 어려운 여행을 하기 위해 주저없이 문무대왕릉으로 정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보문단지를 슬슬 걸어다니며 평온하게 돌아오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경주의 동쪽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늦은 시간 버스를 탔다. 배차 간격이 50분쯤 되는 버스를 방금 놓쳐 꼼짝없이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조급함을 달랬는데, 그건 약간 마음을 내려 놓는 일이었다. 어딜 더 걸어다닐 기운도 없고, 눈앞에 보이는 걸 그리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중간에 보문단지 가는 버스가 몇 번이나 와서 마음이 흔들렸지만 잘 참았고, 마침내 150번 버스를 만났다.
한 시간쯤 걸려 도착한 곳에는 부서진 횟집 여러 개를 지나 바로 바다가 있었고, 조약돌로 채워진 해안을 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멀리에는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을까지 갈 일은 없었고, 바다는 이미 눈 앞에 있었다. 문무대왕릉도 코 앞에 보였다. 아, 나와 함께 내린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내리기 전 흔들리는 버스에서 버스 노선도를 핸드폰으로 찍고 계셨다. 그녀는 캐리어를 끌었고 그만한 배낭도 메고 있었다. 내가 간판이 부서져서 사작의 형태만 갖추고 바람이 통해 너덜거리는 글자가 있는 가게를 보고 약간 얼어붙었던 와중에 그녀는 드르륵드르륵 캐리어를 끌며 사라졌다.
바다는 누군가 일부러 놀러오는 일이 힘든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무엇을 살 수 있는 가게는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대절해서 여행온 대학생 무리가 보였고. 윗통을 벗기에는 아직 쌀쌀한데 대학생 남자애들 몇몇이 소리를 지르며 윗옷을 벗고 뛰어다녔다. 종합해보라. 바다 위의 무덤을 찾은 사람들의 프로필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아 스산했고, 나는 내리자마자 이곳을 벗어나는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근처에 거의 모든 가게가 불이 켜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가운데, 길 위로 조금 가면 이삭토스트가 있다. 엉망진창이지만 그날 이삭토스트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를 것이다. 해변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해가 지고 있고, 등 뒤에는 다 부서진 횟집들이 널판을 드러내고 삭아가고 있고...
토스트를 물고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캐리어를 끌고 내린 아주머니를 봤다. 무슨암자, 라고 쓰인 곳에 짐을 푸신 모양이었다. 뭘 물어보고 계셨다. 무슨 암자인지도, 뭘 물어보고 계신지도 다 알 수 없지만 이 경치가 새벽과 아침에는 조금 더 따뜻한 걸 보여주었으면. 했지.
다음 날에는 부산에 갔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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