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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흰색 창을 마주하고 앉았다. 삼십 분쯤 그냥 있었나.
삼십 분쯤 그냥 있는 일로부터 쓰기가 시작되려나. 삼십 분이 다 지났다.
저녁 대신 산미구엘을 먹는 사람이 되었다. 말하자면 기린이 더 좋은데, 가끔 행사 상품에서 빠진다. 수영에서 돌아오는 날 늦은 장을 보는데, 두부 아니면 두부이다. 작은 마트에는 맛있는 두부와 맛없는 두부가 있는데 그제는 맛있는 두부가 들어와 있어 사왔다. 하나를 반으로 나눠서 부쳐 먹는다. 두부를 먹는 일은 행복하고, 다 먹기에는 더 없이 배가 부르다. 삼등 분을 하기에는 냉장고를 버티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 다음날도 벌처럼 흰 두부를 잘라 후추를 뿌리고 계란을 풀어 부쳐 먹는다.
오리발 수영을 제일 좋아해 월요일을 내심 기다리면서, 일요일 저녁부터 오리발을 챙겨두었으면서 가져오지 않았다. 수영장 가는 도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오리발을 놓고 오다니. 모두 자기만의 오리발을 끼고 레인을 돌텐데, 나는 그럼 산더미처럼 쌓여서 이리저리 휜 오리발 중에서 근사치로 내 발에 맞는 걸 찾아서는 들어갈텐데. 그렇게 되었다. 발에 좀 큰 걸 신고 돌려니 몹시 괴로웠다. 강습이 끝나고 보니 오른쪽 뒤꿈치가 까져 있다. 그날은 그냥 하앴는데, 오늘은 붉고 먼지가 붙어 아프게 생겼다. 오른쪽 뒤꿈치가 까져서 아픈 채로 산미구엘을 먹고 까뮈의 간식을 꺼내준다. 아직 냉장고에 반쪽으로 남아있는 두부는 내일 먹어야 한다.
내일은 책상이 올 것이다. 그것은 아주 커서 내 키와 비슷하고, 어쩌면 그 위에서 잠을 자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튼튼하다. 잠자리를 창가로 옮겼다. 책상을 방 한가운데에 놓으려고. 책상은 벌써 오고 있다. 다리를 뉘이고, 상판을 세워서 저 계단을 걸음 걸음 걸어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받아 적으려고. 한 번 쏟아졌던 면봉이 서로 어떻게 기대있는지, 이틀 치 겉옷이 어떤 심정으로 의자에 누워있는지. 화장실을 다녀온 까뮈가 말아 놓은 카페트가 어떤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지. 까뮈가 물어 뜯어 놓은 한지 전등을 내가 어떻게 잘 붙여 놓았는지. 덧댄 자리에 빛이 다른 무게로 떨어지는지. 창밖의 가로등이 커튼 봉 동그란 구멍에 길게 이어진 별 같은 빛을 쏘아 보내는지. 까뮈가 어떻게 걸어 오는지. 쿵쿵하며 방금 서랍장 위에서 내려와 벌써 자기가 말아 놓은 카페트에 앉아서는 그루밍을 하고 있는지. 어쩜 이렇게 쓸 것이 많은지. 산미구엘을 왜 이렇게나 많이 남기게 되었는지.
그러니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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