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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손톱만큼 작은 것

_봄밤 2019. 7. 9. 22:06

수영장에서 씻고 나오면 사람들의 발톱이 잘 보인다. (발톱이라고 부르지도 않는 것 같다) 매니큐어를 칠하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색으로 반짝여 멀리서도 잘 보인다. 모두 색이 다를 때도 있고, 모두 빨강이거나 검은 경우도 흔하다. 색색의 작은 점이 걷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살아있는 발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 같다. 그 발을 보며 아주 어릴 적 엄마에게 매니큐어를 사드린 기억이 났다.

 

천 원 이천 원 하던 것으로 엄마가 바를 일이 없을 뿐더러 고른 색도 그다지 예쁘지도 않았는데 그걸 엄마는 늘 고맙게 받아 주셨다. 선물하는 입장에서도 늘 쑥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걸 마니또 씨앤에이 같은 데에서 꾸준히 사와서는 엄마에게 드렸다. 한 번이라도 엄마가 화를 냈더라면 그 나이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에게 아주 작은 선물을 다시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에게 고마운 일은 흔하게도 남의 손발톱을 보는 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것이라면 손톱 발톱만 한 것도 찾기 어렵다. 

 

아빠에게 단 하나 배울 점이 있다면 대책없는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하겠다. 자신의 인생을 버려두고 그게 뭐 어쨌다며 웃어버리는 낙천성. 큰 일 나지 않으며 크게 걱정도 하지 않는. 도착하는 곳의 주소 없이 출발해서 남들 한 시간 반 만에 갈 수 있는 길을 두 시간 반은 걸려야 도착하고 마는. 미워하는 아빠의 노래가 감미롭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면, 인생이란 뭔가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바라던 내 모습이 있었는데, 그건 20대 후반, i30를 타고 십 몇층의 오피스텔에 사는 모습이었다. 

물론 30대가 되어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엄마가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면 좋겠다. 라고 내일 문자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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