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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움직이는 유언장

_봄밤 2019. 10. 2. 16:12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요새는 잘 읽지 않는다. 예전에는 예전 글을 읽으며 천잰가? 는 아니고, 낄낄거리면서 재밌게 읽었다. 나는 픽션 만들기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있었던 일을 묘사하는 데 그치는데. 그래도 아쉬워서 한 두개는 거짓을 적는다. 언젠가 거의 모든 사실과 한 가지의 거짓을 구분하지 못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게 은유인지, 실제 있는 물건을 말하는 건지도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이런 일이! 그래서 글을 보고, 없는 물건을 이제와 찾으려 한다면. 예전의 나에게는 비웃음을 사게 되겠지만, 그게 예전의 나에게는 대단히 웃기는 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영영 확인할 수 없는 일을 찾으러 들어가는 꼴이 아닌가. 그건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어떤 귀신과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예전에 쓴 글을 읽지 않거나, 읽어도 그때 그랬구나. 감정만 이해하기로 했다.

 

이제는 더 나이든 나를 위해 어떤 글은 거짓없이 쓰거나, 완전한 거짓말을 써야한다. 그리고 알아볼 수 있게 견출지로 붙여놔야 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어떤 한 사람에게만 나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굴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코로나를 좋아한 적이 없다. 

 

나의 일부가 살아있는 몇 사람에게 있다. 그건 움직이는 유언장 같다고도 생각한다. 밤씨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밤씨가 누구인가요? 그들은 나를 부르는 지칭도 모두 다르다. 그들이 모두 모이는 날은 아마도 내 장례식장이 아닐까. 유언을 한 적은 없지만 유언장 같은 이유이다. 그 몇몇이 모여 먹었을 맥주 뚜껑만큼 내 이름이 쌓일 것이다. 몇 개는 겹치는 얼굴, 몇 개는 처음 보는 모습.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보고 놀란다. 말로만 듣던 사람이네. 혹은 전혀 알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조각들을 산산히, 공평히 놓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소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등이 없는 사람이 될까봐. 그림자가 없는 평면이 될까봐. 

 

자, 한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굉장히 대단한 일이 되었다. 하드나 비밀번호를 잊은 웹페이지가 아니라 사람을 걱정하기 시작하게 됐다. 네가 이렇게 사라지면 안 된다. 그럼 나도 일부분 사라진다. 

 

언니에게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수경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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