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무서워하던 문이 있었다. 일곱살 때인가, 여덟살 때인가. 문의 반절쯤 바깥이 잘 안보이게 만들어진 유리가 끼워져 있었는데 주방에서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현관 문 말고도 집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는 문이 하나 더 있던 셈이다. 자주는 아니었고 이따금 주방에서 엄마만 이용하셨던 것 같다. 그때는 저녁을 준비하는 어스름이 뭍어나는 시간이었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무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문은 가끔 소리를 전했고 밖이 완전하게 보이지 않는 유리였기 때문에 뭐가 잘 보일듯 말듯했다. 때문에 더 무서워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는 저녁에 주방문과 나만 놓였다.

 

엄마는 분주하시고, 아무도 그 문과 싸우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눈을 가늘게, 크게 뜨며 싸웠다. 식탁에 머리를 괴고 바깥에 뭐가 자꾸 보이는데? 의자에서 일어나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 주방 문에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여길 들여다 보는 것 같은데? 확신에 찬 두려움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저기 바깥에 뭐가 있나봐. 

 

엄마는 힐끔 바라보고는 아무것도 없어. 하고는 다시 저녁을 준비하셨겠지만 내가 다시 두 번쯤 더 말했을 것이다. 아냐, 뭐가 있어. 그러자 엄마는 하시던 일을 놓고 문으로 걸어가 나와 약속도 하지 않고는 벌컥 열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네. 그렇지? 하고 나를 보고는 여전히 손잡이를 잡은 채로 용감하게 아무것도 없는 바깥을 함께 봐주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뭐가 있었는데, 엄마가 잡혀 갈텐데, ...다 도망갔나봐. 

 

그 일로 문에 무언가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불안하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거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도 엄마가 더 세구나. 엄마는 그걸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엄마는 정말 멋졌다. 엄마의 멋짐은 엄마에게서 느꼈던 어떤 거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본 최초의 내 사람이자 최초의 타인. 엄마를 타인으로 인식하면서, 나는 엄마의 '무엇'이 아닌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거리는 또한 엄마를 내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가끔 시니컬하게 혼잣말하던 게 생각이 난다. 그건 엄마로서 하는 말이 아니었고, 나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엄마가 아닌 사람에게, 거는 말이었다. 

 

그런 문이 여전히 있는 집에서 삼십 년이 흘렀다. 엄마는 구몬 한자를 하신다. 내가 그렇듯이 구몬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몇 분 되지 않는다. 빨래를 하시며, 상자를 포장하시며, 너무 크게 울리는 전화를 받으시며, 앉아서 한자를 쓸 시간은 별로 없다. 두 어자 쓰는 동안 벌써 그 볼펜에 대해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 0.3m심이야, 예전에 봄이가 한 다스 사준 걸 이제 다섯 개두 넘게 썼다. 엄마의 한자 획은 여전히 유려하지만 마음만큼 잘 써지지는 않는다. 또 이런 말씀도 하신다. 근데 천 개를 외울 수 있을까. 천 개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엄마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수라고 대답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다. 엄마에게는 엄마만이 남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내가 못 보고 온 거겠지. 요새는 이런 것도 나오네. 하며 내 유치원 방학숙제책을 보며 피식 웃던 엄마. 그때 엄마 나이를 내가 살고 있다. 시니컬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을 때, 알아챈 엄마의 시니컬함. 얼마나 불안하고 괴롭고 외로웠을, 그런 마음을 대체 누구와 나누었을까. 얼마나 숨겼을까.

 

내 머리를 쫑쫑 당겨 따며, 엄마의 눈길이 닿았을 허공을 생각한다. 

 

 

 

 

'이후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고 싶지 않은 것들-데버라 리비  (0) 2020.03.01
목소리를 키우라는 건  (0) 2020.02.07
움직이는 유언장  (0) 2019.10.02
한라봉과 폐점하는 가게  (0) 2019.09.24
춤추는 니스  (0) 2019.09.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