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업이라는 사업이 파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상품을 소비할 기회이고, 관광객이 그 기회를 사는 목적은 여가 선용이다. 그 외에 관광객이 사는 것은 유적지 기념품이나 토끼풀 무늬가 들어간 소금, 후추통 같은 공예품 정도이다. 지금은 이렇듯 여가가 사업의 목적이 되었지만, 한가함이 근면함의 반대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어쟀든 지금 관광업은 정보화시대의 완벽한 사업, 곧 여가와 소비와 이동과 연출을 파는 사업이다. 관광은 식민주의의 역전(부유한 나라의 재화 중 일부를 가난한 나라에게 돌려주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반복(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계속 침입하고 통제하는 수단)인 듯하다. 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 희극으로 재..
권여선의 을 읽고 있다. 그녀의 글은 밀도가 높아서 단편집이라도 하루내 다 읽어버리는 것은 어렵다. 하나를 읽으면 곱씹어 보는데 또 시간이 걸려서 다 읽으려면 언제나 아직 좀 멀다. 너무 잘 쓴다는 생각이다. 그녀의 글은 아주 똑똑해서 읽는 '스릴'이 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까. 좀처럼 생각하지 못한 것을 잡아낼 것이다. 단편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N은 기간제 교사로 2개월 밖에 안되는 일을 하러 왔다. 단기 알바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 자리가 2개월이라니. 이렇게 불성실한 공고에도 지원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4개월 전에 쓰러지신 어머니의 병원비와 수술비, 그리고 요양병원 비용을 위해 그는 올해 임용고시를 포기하며 2개월 짜리 일자리에 들어간다... 이렇..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2018년 김지은 씨가 JTBC 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2년 후 책이 나왔다. 2020년 3월. 이 책을 산 건 다시 그로부터 반 년이나 지나서였다. 너무 늦게 샀다. 이 한 권의 책이 어떤 용기와 절망의 결과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아주 소중한 사람의 인생이 모조리 들어 있었다. 이런걸 내가 봐도 되는가. 하는 마음과 함께 나라도 보고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다. 아주 작은 하드가 되어서 를 기억하는 것이다. 죽기 전까지 지워지지 않을 이야기.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는 인간 하드. 그렇게 처참했던 554일간의 성폭력 고발 기록을 함께 하는 것이다. 기록의 의미. 이 책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수 많은 약자와 여..
황정은의 를 읽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등산화'이다. 등산화를 통해 엄마와 자식들, 특히 첫째와 엄마의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등산화는 단편 소설 2개에서 다른 시차로 나온다. 1. 이순일은 둘째 딸 한세진을 데리고 할아버지묘를 파묘하러 간다. 이순일은 등산화가 필요해서 큰 딸 한영진의 것을 가지고 나왔다. 막상 쓰려고하니 삭아서 밑창이 떨어져 나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이순일은 그것을 거기에 버리고 온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큰 딸은 등산화가 있는 줄도 모를것이다. 저렇게 삭아서 망가져 있을 것도 모를 일이었다. 2. 몇년 후, 한영진은 함께 일하는 백화점 동료들과 주말에 산에 가기로 했다. 한영진은 등산화를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등산화는 나오지 않는다. 한영진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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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스케일의 문제이다. 나의 크기를 인지하고 타인과 세계를 보는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단양의 여행기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단양에 가서 도담삼봉을 보고 할 말을 잃고 돌아왔다. 도담삼봉을 본 아침을 생각할수록 아득해진다. 함께 갔더라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무어라고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보통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많지 않다. 사람이 우주에 대해 늘 생각한다면 이곳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몸뚱이 안에 살아야 하는 스케일의 한계이자 슬픔이다. 결국 몸에 빗대어 생각하고 세상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다. 마늘에는 6쪽이라는 스케일이, 쏘가리에는 민물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있다. 단양은 마늘이 유명하다. 마스코트..
산에 갔다. 사는 곳이 이미 산의 정상에 가까워서 정상에서부터 계속 내려가는 좀 이상한 산책이었다. 그날은 비가 그쳤는데, 산은 아직 비를 품고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단단한 바닥에 빗물이 느껴졌다. 산 속의 공기는 달았고, 덥지 않았지만 땀이 났고, 나무와 땅처럼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대개 옛 이야기에서는 이쯤에서 무언가를 만나서 긴 이야기를 시작하던데. 걸으면서 누가 특별한 생각을 할까. 한 걸음하면 한 걸음 따라오는 일의 반복. 8월도 마지막 날이구나로 시작하는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해보았다. 갑자기 칠월 마지막 날이 생일이었던 친구가 생각났다. 연락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 이번 생일에는 어떻게, 잘 지내냐며, 이야기를 고민했었는데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것이다. 그러자 7월이 생일인 여럿이 다 같..
오래 전의 일을 써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오래 전의 일.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어제 아니면 오늘 일 같고, 생각은 멀리 가지 못한다. 그래도 주말엔 온몸으로 다른 것에 빠져들려고 노력한다. 고양이 털을 빗는 일도 정성스럽게 한다. 오래오래 한다. 고양이가 자리를 떠도 조금은 쫓아다니면서 털을 모은다. 건조기에서 나온 아주 따뜻한 빨래를 하나 하나 잘 개었다. 귀를 맞춰서 포개 놓는다. 내가 잘 고민했으면 좋겠다. 문득 달리기를 하고 싶다. 달리기. 달리다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단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리'자일 것이다. 약하고 가늘게 잇는 가운데 말. '라'도 아니고 '리'라는 말을 누가 눈여겨 볼까. 그것은 하나마나한 말 같고, 어디 기대어 있는 말 같고, 크게 웃을 줄도 모를 ..
삼국지 생각이 난다. 모래바람이 일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피냄새, 환란이 이는 세상에 눈 돌리고 싶다. 이불이 따뜻한 침대에서 그들을 가여워하면서. 아이고, 어쩌나, 하나마나한 추임새를 하면서. 도망쳐야 할 때 도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 거기엔 목숨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임을 잘 아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삼십육계 줄행랑. 요새 나는 제자리에서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는 것만 같고. 마음만으로 피할 수있는 화살이 없다는 걸 알면서 그만하기를. 바라고만 있다. 잘 도망하는 것도 전략이었겠지. 그에 비하면 이곳은 얼마나 깔끔한가. 비가 오는 날에 서핑을 했다. 여기서 양양까지, 양양에서 다시 해변으로. 서핑은 힘들었고 보드는 너무 무거웠다. 안경을 벗어서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지만 제대로 보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다음 주 월요일의 연차와 그 다음 주 월요일의 연차, 그리고 그 다음 주 월요일의 연차를 생각했다. 사실 어떤 월요일에도 연차는 없었다. 아니야, 차라리 월화수목금을 다 써버리자. 한 일주일을 잠만 자자고 생각했다. 그것도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껍데기가 출근하고 앉아 있다. 백숙을 먹자고 했으나 먹은지 세시간 만에 허기가 졌다. 그러나 퇴근하고 너를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너를.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너의 시간을. 한 순간도 허투루 살 수 없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 마지 않아야 하는 시간을. 사방의 벽이 말을 하지 않듯이 퇴근 후 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에게도 걸지 않아도 되고, 그냥 잠을 자도 된다. 그러나 너는 아마 혼자서 잠도 자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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