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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스케일의 문제이다. 나의 크기를 인지하고 타인과 세계를 보는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은 단양의 여행기이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단양에 가서 도담삼봉을 보고 할 말을 잃고 돌아왔다. 도담삼봉을 본 아침을 생각할수록 아득해진다. 함께 갔더라면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무어라고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보통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서 생각할 일이 많지 않다. 사람이 우주에 대해 늘 생각한다면 이곳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몸뚱이 안에 살아야 하는 스케일의 한계이자 슬픔이다. 결국 몸에 빗대어 생각하고 세상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다. 마늘에는 6쪽이라는 스케일이, 쏘가리에는 민물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있다. 단양은 마늘이 유명하다. 마스코트는 온달과 평강이라고 되어 있는데, 군청 홈페이지에 가면 주의나 안내를 하는 팝업 아래에 쏘가리가 그려져 있다.
단양에서 만난 도담삼봉의 기이함은 크기에서 온다. 사람들은 바다에 떠 있는 섬은 많이 봤지만, 아주 먼데 있기 때문에 작고, 눈에 이따금 걸리는 것이다. 바다는 손에 쥘 수 없고 내 것이라고, 내가 어찌할 수도 있다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바다는 미지의 것이다. 그러나 남한강 한가운데 있는 세 개의 봉우리는 좀처럼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이 가까우면서도 크고, 한 편으로 작다.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느낀 감정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건축의 아름다움을 꺼내와도 미치지 못하는 자연의 우연에 대한 경외가 첫 번째라면 세 번째쯤의 감정은 신이 된 듯한 기분이다. 이 기이한 물의 정원을 눈 앞에 두고 유유자적하는 것이다. 놓쳐버린 세 개의 공깃돌처럼 도담 삼봉을 바라볼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두 개의 공깃돌을 손에 쥐고 있는 양. 남한강이 매우 크긴 하지만 바다만큼 넓진 않다. 인간을 아주 져버릴만큼 크지 않은 강. 그 안에 삼봉은 매우 구체적으로 눈에 그려진다. 삼봉을 작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한눈에 들어온다는 데 있다. 원한다면 배를 타고 삼봉에 손을 기댈 수도 있을 테다. 거대한 면면이 아주 가깝게 보이면서도, 주변의 산에 비하면 아주 작기 때문에 이상하고 낯설다.
정도전의 어린시절 벗이 이 삼봉이라는 이야기는 소름이 돋는다. 나라의 기틀을 닦는 사람 정도 되어야 이것을 호로 가져다 쓸만할 것이다. 이것은 삼봉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인간의 세상을 좀 비켜났다는 포부이기도 할 것이다.
계절마다 다른 삼봉은 어떨까.
삼봉에도 눈이 쌓일 것이다.
나는 겨울의 삼봉을 생각할 수도 있다.
머리가 아득해진다.
서울은 모든 것이 앞에 있다. 코앞에, 지금 바로 일어난다. 움직이고 악을 쓰고, 사람이 만들어내고 일으킨 건물들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간의 시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재화가 걸려 있는 허상의 것들을 사고 판다. 담보하는 것들로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단양을 이루는 지질은 이미 인간이 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억 단위의 시간이 쌓여 만든 암벽과 동굴들, 그리고 그 주위를 저 만한 넓이로 흐르는 강. 무수한 시간을 공들여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토록 넓은 강을 가로막고 있는 저 높디높은 산. 그 아래에서 자란 사람은 이 악다구니, 인플레의 도시에서 사는 사람과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나라는 스케일을 지독하게 생각하게 하는 장소를 벗어나서 감히 가늠할수도 없는 시간을 보다 왔다. 아침의 운무에 첩첩으로 멀리 보이는 산들. 눈이 좋으면 좋을수록 겹으로 둘러싼 더 많은 산이 보일 뿐이다. 이토록 크나큰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2020년 9월 28일
도담삼봉 가는 길
단양 버스 시간표 상진1리 기준(상진 1리에서 10분 정도 소요)
6시, 6시 45분, 7시, 7시 45분, 8시, 9시 45분, 11시 30분,
12시 30분, 13시 40분, 15시 15분, 16시 5분, 16시 35분, 17시 10분,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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