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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갔다. 사는 곳이 이미 산의 정상에 가까워서 정상에서부터 계속 내려가는 좀 이상한 산책이었다. 그날은 비가 그쳤는데, 산은 아직 비를 품고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단단한 바닥에 빗물이 느껴졌다. 산 속의 공기는 달았고, 덥지 않았지만 땀이 났고, 나무와 땅처럼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대개 옛 이야기에서는 이쯤에서 무언가를 만나서 긴 이야기를 시작하던데.

 

걸으면서 누가 특별한 생각을 할까. 한 걸음하면 한 걸음 따라오는 일의 반복. 8월도 마지막 날이구나로 시작하는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해보았다. 갑자기 칠월 마지막 날이 생일이었던 친구가 생각났다. 연락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 이번 생일에는 어떻게, 잘 지내냐며, 이야기를 고민했었는데 그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것이다. 그러자 7월이 생일인 여럿이 다 같이 생각났다. 잊었던 일. 흐릿한가 해서 살펴봤더니 해도 꿈쩍 하지 않고 그곳에 여전히 명명백백 바위처럼 존재하는 사실을. 

 

걷고 있으면, 내가 잘못한 일에서 조금은 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한 나와 조금 떨어져서 걷고... 손도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좌우로 흔들면서 씩씩하게... 

 

<인터스텔라>를 다시 봤다. <테넷>이 개봉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테넷을 볼 생각은 없었지만 동시간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던 듯하다. 지금 영화관에는 테넷이 상영중이니까 나는 쇼파에서 인터스텔라를 본다. 그러나 아주 보기로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성의가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졸았으며, 조금은 자기도 했는데 깨기 전으로 돌려보지 않았다. 영화는 계속 진행중이었다. 내가 채집한 우연의 인터스텔라. 주인공은 과학자 아니면 엔지니어인데 우주에서 갑자기 강한 확신으로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문을 열수도, 나갈 수도 없는 공간에서 그런 말을 좀 한다고 뭐가 크게 잘못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밖에서 아기들이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뾱뾱하고 무게만큼의 소리가 나는 신발. 뾱뾱, 살아있음을 주저하지 않는 소리들. 아이들이 움직이고 있다.

 

한 달이나 지났다고 생각한 친구의 생일은 사실 8월 말이었다. 칠월과 팔월을 헷갈리게 된 것이다. 달력이 섞여서 지나가는 2020년. 

 

좌우로 흔들던 손을 놓치면, 누가 먼저 다시 잡으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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