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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아직 멀었다는 말>을 읽고 있다. 그녀의 글은 밀도가 높아서 단편집이라도 하루내 다 읽어버리는 것은 어렵다. 하나를 읽으면 곱씹어 보는데 또 시간이 걸려서 다 읽으려면 언제나 아직 좀 멀다. 너무 잘 쓴다는 생각이다. 그녀의 글은 아주 똑똑해서 읽는 '스릴'이 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까. 좀처럼 생각하지 못한 것을 잡아낼 것이다. 단편<너머>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N은 기간제 교사로 2개월 밖에 안되는 일을 하러 왔다. 단기 알바도 아니고 학교 선생님 자리가 2개월이라니. 이렇게 불성실한 공고에도 지원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4개월 전에 쓰러지신 어머니의 병원비와 수술비, 그리고 요양병원 비용을 위해 그는 올해 임용고시를 포기하며 2개월 짜리 일자리에 들어간다... 이렇게 짧은 일자리는 어떻게 나게 되었을까? 역시 건강상의 문제로 2개월 휴직을 낸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학교 조차 인원이 배치와 수급에 여유가 없다. 누군가의 목숨값으로 겨우 내어지는 일자리가 있을 뿐이다.
<너머>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갈라 우스꽝스럽게 싸우는 동안 뭐 하나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학교 내의 크고 작은 일 대한 이야기가 반절, 그리고 요양병원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반을 차지한다. N이 치사해서 벗어나고 싶은 비정규를 어떻게 참으려고 애를 쓴다고, 다른 한쪽이 평온해 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N에게는 더 악랄한 이야기가 기다린다.
요양병원은 병실의 인원수에 따라 간병인 배치가 달라졌다. 병실의 인원수가 적어질 수록, 다시말해 비용을 더 많이 낼수록 나은 케어를 받는다. N의 어머니가 계신 층에는 8인이 한 병실을 쓰는데 여기는 초짜 간병인을 쓴다고 다른 사람에게 듣는다. 그러나 간병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N으로서는 초짜와 경력자의 볼봄이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간병인은 친절했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N을 안도하게 한다.
"어머니, 울면 안 돼요, 울면 밉다고 했지요? 울면 미워 보입니다. " 간병인이 거즈로 어머니의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오늘 아침에는 노래도 해놓고 지금은 왜 웁니까?"
"네? 어머니가 노래를요?"
"우리 어머니, 노래 잘해요. 기분좋으면 이쪽 손을," 하며 간병인은 마비가 오지 않은 어머니의 오른팔목을 잡고 허공을 저었다.
"이렇게, 이렇게, 흔들면서 노래합니다. 그럴 땐 아기 같습니다."
그렇다. N의 어머니는 말을 못하신다. 말을 못하는 엄마가 노래를 하신다고? 아기 같으시다고? N은 그 말을 믿는다. 어쩐지 울컥하고, 안심한다. 시간이 지나 간병인이 바뀌게 되었는데, 바뀐 이유는 그들의 일자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좀 불친절해보이는 사람이다. N은 어머니가 오늘도 노래를 하셨는지 간병인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어찌 건성건성 돌보았으면 접치지 않은 살도 이 지경인데, 여기 겹친 데는 더 심하지 않습니까?"
간병인이 어머니의 오른팔목을 들어 겨드랑이의 욕창을 보여주었다. 그건 마치 예전 간병인이 어머니가 노래를 하며 이렇게 이렇게 손을 흔든다고 오른팔목을 들어올리던 모습과 흡사했다.
만싱창이가 된 어머니의 몸이었다. 책장이 넘어가고 바뀐 간병인이 이것좀 보라며 이불을 걷어낼 때, N의 어머니 몸 냄새가 풍겨오는 듯 했다. 이렇게 이렇게 손을 흔드는 것이 최선의 절규였을 어머니. 그것을 노래로 포장했던 간병인의 듣기 좋은 말. 시간이 지나면서는 울지도 않은 어머니의 심정이 말 한마디 없이 건네져 왔다.
2달, 3달의 계약직이 주는 생계의 불안정함, 그곳에서의 악다구니가 우스꽝스럽게 흘러가는 동안 정규직의 일자리에 들어갈 수 없는 2030대로 추정되는 N의 삶이 그려지고, 자신의 생계 뿐만아니라 부모의 간병을 돌봐야 하는 이중고가 있다. 동시에 역시 노동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간병인의 세계가 있고, 화폐와 노동이 교환되는 시장임을 알면서도 N은 간병인이라는, 어른의 돌봄을 기댔던 것 같다. 그리고 비용없이 선의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도 알게 된다.
간병인이 전한 '가짜인 말'에 위로와 안심했던 N은 자신이 그렇게 저주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마음에 현혹되어 실체를 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바보같음이. 이 와중에 N에게 얼마간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어머니 몸 한 번 보지 않을 수가 있어.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모두 살필 수 없는 마음과 생활의 구멍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 내미는 호의같은 것으로 채워질만한 구멍이 아니다.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다고, 지금 세상이 그렇다고 이 소설은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안되는데. 그래도 진실을 말하고, 잘 돌와주시는 간병인을 만나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좀 다행이다.
권여선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두루뭉술 잘 살게 된다는 기대일랑 집어치우세요. 이렇게 저렇게 듣기 좋은 이야기는 이제 없습니다. 세상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악랄한 이야기로 가득하니까요. 그러니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호의를 베푸세요. 당신이 걸어간 가시밭길을 그대로 걸어들어갈 사람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이 소설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나도 어른이니까,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뻥을 치지 말자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체득한 진실을 말하자는 것.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10년 어린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이야 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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