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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업이라는 사업이 파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상품을 소비할 기회이고, 관광객이 그 기회를 사는 목적은 여가 선용이다. 그 외에 관광객이 사는 것은 유적지 기념품이나 토끼풀 무늬가 들어간 소금, 후추통 같은 공예품 정도이다. 지금은 이렇듯 여가가 사업의 목적이 되었지만, 한가함이 근면함의 반대말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어쟀든 지금 관광업은 정보화시대의 완벽한 사업, 곧 여가와 소비와 이동과 연출을 파는 사업이다. 관광은 식민주의의 역전(부유한 나라의 재화 중 일부를 가난한 나라에게 돌려주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반복(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계속 침입하고 통제하는 수단)인 듯하다.
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 희극으로 재공연하는 것이다. 관광객에게서 순례자의 메아리가 울리기도 한다. 물론 세속의 관광객이 찾아다니는 것은 더 다양하고 더 변덕스럽다. 예컨대 태양을 찾아다닐 수도 있고 특정한 지형이나 기후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축제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과거의 흔적과 유물을 찾아다닐 수도 있다. 관광객은 묘한 인종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여행의 진정한 목적과 묘미는 그저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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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은 탁월하다. 나는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왜 마음이 안 좋아지는 지' 의문을 가졌을 뿐이다. 솔닛은 이 감정의 근원을 역사와 정치의 일로 끌고 올라가 답을 가져 온다. 그녀에 의하면 '관광은 식민주의의 역전이면서 동시에 반복'이기 때문이고, 또한 관광의 역할은 '전쟁, 침략, 피난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행렬을 놀이로 재구성하는 것, 이주의 비극을 욕망과 지출의 희극으로 재공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의 청년기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 '청년기'라는 말이 그녀의 완벽한 글쓰기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36살에 이런 책을 썼다니!(!!) (솔닛은 61년 생이고, 처음 아일랜드에 간 것은 87년이고, 이 책이 나온 것은 97년도라고 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비교적 늦게 소개된 이유는 주제의 희소성 때문이었겠으나.(아일랜드 여행기이다. 나는 아일랜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여행기를 누가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이런 여행기를 한 나라가 가질 수 있다면, 국책사업으로 그녀에게 여행기를 발주를 해야한다. 부디 제발 우리나라에 와서 여행기를 남겨달라고. 그건 아마 그 나라가 가질 수있는 최고의 여행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역사와 정치와 문화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유산 자체가 될 것이다.
한참 읽고 있다. 두 번 읽어도, 세 번 읽어도 좋을 책.
정희진의 추천사가 웃기다. 요즘말로 하면 '주접'을 하고 있다. 자신을 낮추지 않는 명랑한 주접이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나는 아일랜드는커녕 유럽도 가본 적이 없지만, 늘 지인들에게 버킷리스트로 아일랜드 여행을 권한다. 이 책은 나의 주장을 증명한다. 솔닛의 글은 인구 350만 명에 연평균 관광객 300만 명인 아일랜드에 대한 이야기이자 세계사, 영문학, 여행에 관한 최고의 문장이다. 읽기로서의 여행, 여행하기 위한 읽기의 정석이다. 이 시대, '집'에서 여행하고 싶다면 이 책 이상이 없다. 여러 번 읽고 필사할 책이 있다는 기쁨, 역시 솔닛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단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집에 간 적이 있다.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물 한잔 먹고 가라고 해서 들렀다. 아주 따뜻한 해가 그 집으로 온통 지고 있었다. 알지 않으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집주인의 취향이 그 해에 빛났다. 여행 내내 가장 맛있고 온전한 쉼이었다. 여행중에는 왜 이런 온전함을 느끼기 어려운지 생각했다. 여행중이라도 어떤 것은 여행이고, 어떤 것은 여행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긴 글과 생각이 필요하겠지.
리베카 솔닛은 최고이고,
나도 좋은 여행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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