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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는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았단다
니모의 탄생은 수난 그 자체였다. 눈도 뜨지 못했을 때 수많은 형제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형제 뿐만 아니라 엄마도 잃어버린다. 니모는 가장 허약한 개체였다. 날 때부터 한 쪽 지느러미가 작아서 헤엄을 잘 치지 못한다. 아빠는 행운의 지느러미라고 하며 부러 파이팅을 하고 남들과 다른 지느러미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키우지만, 사실 그 지느러미가 가진 힘을 믿지는 못했다. 아빠는 이미 물가에 있으면서도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대하듯 니모를 먼 물에 깊은 물에 가지 못하도록 가둔다. 탄생이 전쟁이었던 악몽을 기억하는 아빠는 니모를 그저 잘 '존재'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다. 그러나 니모는 가만히 존재하는 인형이 아니므로, 자신의 최선이 어디까지 닿는지 알고 싶다. 마침내 물고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제일 강한(!) 아들임을 잊은 아빠. 니모를 찾을 수 있을까?
2. 어느 치과의 수조에
'아름다운 생태'가 존재할 확률에 대해
용기 덕분에 멋지게 보트 닿은 니모. 그 용기 덕분에 인간에게 잡혀간다. 용기를 택하면 수난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요! 물론이다. 대신 다른 수난이 시작된다. 니모가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 후로 뭘 하든 약한 지느러미 때문이라고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자기 극복의 서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를 넘어서는 용기를 보일 때, 이야기는 뒤집히고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말린이 혼비백산 니모를 찾아 떠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바다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건 죽음에 가까운 일이니까. 몰린이 가상의 죽음과 대결하는 동안 니모는 딴 세상에 도착한다. 이때 수조가 보여주는 세상은, 우리의 가시지 않는 의문과 불신에 대한 디즈니와 픽사의 대답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도착한 낯선 세계가, 과연 환대로 가득할 수 있을까?" 디즈니와 픽사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당신이 지금 만나는 사회도 원래 당신이 알던 곳이 아니다. 그것이 먼먼 바다에 나온 어떤 스쿠버 다이버에 의해 놓여진 니모의 수조와 대체 무엇이 다르냐는 반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성장에 대한 환대이다. 조금씩 자라 당신이 모르는 어떤 곳에 닿게 되더라도 그곳엔 재미있는 사람들과 새로운 것들도 가득할 거라는 응원. 태생이 다른 이들로 구성된 인공의 수조에도 즐거움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는 날들이 있다. 이들은 니모에게 수조의 식구가 될 수 있도록 파티를 꾸려주고, 니모의 용기를 기꺼이 봐준다. 어떤 이유로 어떤 세계에 도착해도 너를 환영하는 이들이 있을 거란다. 이건 다시 말해 네가 나중에 니모처럼 갑자기 네가 있는 세상에 떨어지는 이를 만날텐데, 환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3. 킵 스위밍~ 킵 스위밍~
니모가 수조에 도착할 동안 혼비백산한 말린은 도리를 만난다. 도리는 단기 기억상실을 앓는 물고기이다. 무엇이든지 잃어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니모를 데리고 떠난 보트의 향방을 기억한다. 사실 도리는 의지가 잘 안되는 캐릭터다.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지금도 세상이 무너져 가고 있는 말린은 도리를 떠나고 싶다. 그러나 도리는 말린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그냥 수영해, 계속 수영하는 거야. 그게 바닷속으로 추락하는 마음을 구하고 끝까지 닿도록 도와준다.
4. 잊는 것은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도리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자주 잊기 때문이다. 다 까먹기 때문에 가볍다. 세상은 그저 한낱 일렁임이고, 나는 가벼운 물고기일 뿐이다. 잊는 것이 때로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도리는 알려준다. 가볍고 경쾌하게 세상을 대하면,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걸 도리는 보여준다.
5. 일을 다 한 후에는 손을 놓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수조에서 니모가 니모의 난관을 넘고 있을 무렵, 말린도 시드니의 바다까지 수도 없는 수난을 맞는다. 그 중에 하나는 고래에 먹혔을 때인데, 고래의 닫힌 입으로만 나갈 생각을 하는 말린에게, 도리는 이제 그만 손을 놓자고 말한다. 고래와의 믿을 수 없는 대화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을 최선으로 다 했을 적에는 하늘에 맡기는 대범함도 필요하다는 것. 이 둘은 마침내 고래의 숨구멍 분수(!)를 통해 다시 바닷속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6.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말린이 바다를 건너며(?) 마주한 수많은 이야기는 말린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말린은 자신이 마주한 험난한 상황, 그 상황을 다 감수하고 또 먼 바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닷속에서 자신의 일생을 위한 서사만을 접하던 이들에게 일단 아들이 보트를 건드려서 잡혀갔다는 이야기부터 심상치 않다. 그 아들을 구하고자 상어와 싸우고 고래에 먹히고 해파리 떼를 지난 작은 물고기의 이야기는 전 바다에 퍼지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단서로 마침내 '니모'를 찾게 된다.
니모를 찾아서는 아빠 말린이 니모를 찾는 이야기지만, 니모가 자신를 찾는 이야기도 된다. 서로 니모를 찾아다닌 이야기. <니모를 찾아서>를 둘러싼 6가지 인상깊은 장면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용기와 환대의 서사. 킵 스위밍~ 가벼움과 잊기.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할 것. 도리처럼 나도 가볍게 가볍게 별 것 아닌 세상을 한낱 물고기로 즐겁게 마주하고 싶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환대를 기다리는 긍정을 갖고, 나 역시 낯선 이의 도착을 환영하는 넓은 사람이 되어서.
무엇보다 <니모를 찾아서>를 본 이들이 새로운 세계로 떠나게 될 때, 두려움보다 기대를 갖게 되기를.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그 무엇을 찾아낸 이야기를 써야한다. <니모를 찾아서>가 내게 보여준 것들.
20년 12월에 초에 보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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