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중에 기영이라고 있었다. 깡마른데다가 터울이 있는 형들 옷을 물려 입어 티셔츠가 항상 컸다. 뛸 때 가는 몸이 다 드러나도록 펄럭거리는 게 굉장했다. 어깨 죽지에 날개라도 붙은 것 같았고 또래보다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비슷했다. 기영이는 윗말에 살아서 어울려 저녁도 먹고, 어른들 참에 끼어 옥수수나 막걸리를 한 입씩 먹곤 했다. 어느 날은 대청에 모여 참외와 수박을 먹었는데, 기영이는 수박을 포도와 헷갈렸다. 그것들은 여름에만 나고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른들은 웃으며 친절히 알려주었다. 기영이는 두 해 여름을 보내고 수박과 포도를 구분하게 되었다. 처음, 수박을 보고 포도라고 하던 날 나는 수박씨를 다 뱉으며 웃었다. 옆짐을 지고 으쓱하게 말하되, 나는..
퇴근길 그녀는 포장이 잘 된 계란 열구를 한 손에 들고 걸었다. 보폭을 따라 계란의 중심이 움직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동그란 움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손바닥을 통과해 몸으로 전해졌다. 그녀는 대답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보니 언제나 이맘때쯤 어둑해지는 모습이다. 별 볼일 없었고 항상 지나는 모퉁이에 쓰레기가 산적해 있었다. 그때. 여전한 모습 가운데 못 보던 것이 들어왔다. 이런 집이 있었나 싶은 새로운 간판이었다. 청국장 생선구이가 한 칸씩 차지해 사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로등 전선줄이 위험하게 엉킨 곳 바로 위였다. 생선구이는 가까스로 제 이름을 지키며 환했다. 가게 정문을 보니 평소 거의 사람이 없던 가게였다. 항상 그곳에 있었겠으나, 이 길을 걸은 지 두 달 만에 처음 본..
『뿔바지』라는 책을 구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안 살것 같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산다면? 그럴 순 없다. 책임감은 뻥이다. 누군가라니 뺏길 수 없지. 얼른 사서 이 책의 존재를 모르게 하자 저자는 자끄드뉘망역자는 김태용 여기까진 믿겠는데 표지그림 마리나 막시모바뒤표지 로마의 떠돌이 탐정 파올로 그로쏘표지날개 글 장드파 ... 그러면 판권에 표지그림 박상순뒤표지 글 강정표지날개 글 박정대 라고 쓰지를 말던가. 홈페이지를 찾았다. (그림을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가독성 떨어지는 파란 배경에 흰색 글씨.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책을 만듭니다' 이달의 소설이달의 그림이달의 시/산문 등을 연재하고 있었고 이달의 시/산문을 읽어보았다. 제목은 해변의 백가흠- 정지돈, 오한기 (클릭하면 본문으로 이동합니다..
그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는 40대 남성으로 단정한 머리에 이마가 조금 훤하다 싶었고, 연갈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배경은 바람이 날아간 하늘색. 테두리가 흰색으로 선명한 증명사진이 지하철 바닥에 떨어져 있다. 건너편에 앉자마자 보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탔을 때부터 내릴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바닥에 얇게 누운 그의 인상착의를 빗눈으로 알아 보았다. 누가 밟을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지켜봤다. 당신은 그럴거면 네가 사진을 맡아두지 그랬어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 질문에서 나는 솔직해져야 한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열네 정거장을 오면서 해가 옅어지고 하늘이 무거워지는 것을 보면서 그가 날아가거나 뒤집어지는 일 없는지를 주의깊게 지켜보았..
갈대를 스물 두어살쯤에 썼어요. 이십대 때, 인간은 허무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쓰게된 특별한 배경은 없어요. 그러나 그때 그런 생각을 써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인간은 허무하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네요.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시는 예전에도 잘 안읽었어요. 대학 동기 서른 여섯중에 나 하나만 읽었습니다. 시는 극히 제한된 사람만 읽습니다. 다 시를 좋아할 필요는 없어요. 시는 소수가 읽으면 되는거지요. 그 소수가 제대로 읽어서 다른이들에게..
문지×아레나 LG서비스 센터에서 문지를 볼 줄이야.근사하다. 쉽게 찢어지는 종이에 단편소설. 손보미-언포게터블 전자 기기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일까. 비치된 잡지는 거의 다 '옴므'였다. 어떤 차가, 어떤 셔츠가, 어떤 카메라가. 그 와중에 전,대,미,문. 백 명의 작가가 한 문장 씩, 모두 백 문장을 썼다. 전대미문前代未聞, 전대미문前代未文 원문은 네이버 캐스트에서 볼 수 있다. 92. 92번째 어둠에서 기다릴 것. 이원(시인) --- 자판을 고쳤다. 모든 글자를 칠 수 있게 됐다. 쓰던 자판은 달라고 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분리된 자판이 새로운 자판을 내려다 본다.
연극 -엔론, 밖을 생각하다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판을 만들었던 '제플리 스킬링'이 원했던 것은 놀랍도록 소박했다. 딸아, 주식을 확인해야 해. 왜요? 그래야 아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왜요? 그래야 너한테 많은 걸 해줄 수 있으니까. 왜요? 왜냐면 아빠는 너를 많이 사랑하니까. 단정한 검정색 슈트와 깔끔한 화이트셔츠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다. 만질 수 없는 차트의 숫자, 기호로 남는 거래 장부로 곧 부스러질 부의 공간을 지을 뿐이다. 실재는, 우리가 땅에 닿을 때 무릎이 차게 물드는 것을 느끼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무게가 느껴지는 어떤짐을 들어야 하고, 그 무거움으로 몸이 괴로워야 한다. 내려 놓으면 내려놓아지는 것. 그런 것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을 꾸린다. 에는 사..
낮은 더웠다. 이십칠도까지 올라갔다고 했나, 지상으로 솟은 역 주변에는 햇빛이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그림자와의 경계도 분명했다. 역 앞 폭이 좁은 골목에는 과일을 파시는 분이 모여 계셨고 골목을 다 벗어나기도 전에 지나치게 높은 건물이 있었다. 몇 층인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높은만큼 수가 많기도 했다. 모텔이었다. 한 시를 넘었을까. 앞서 걸었던 젊은 남녀가 그곳 중 하나로 들어갔다. 눈 앞에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모텔 정문을 들어가는 두 개의 마음을 생각해 보다가, 물론 길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밤이 되어 생각하니 그들은 함께 있을 방이 없는 사람. 살 곳은 어딘가 있으되 함께 있을 공간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몇 가지. 물을 사기 위해 돌아다녔다. 물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곳은 1250원이었고 어떤 곳은 690원이었다. 심지어 어떤 곳은 500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곳은 멀었다. 먼 곳에서 돌아오느라 햇빛이 더웠다. 자건거를 타는 할아버지와 무엇을 끌고가는 할아버지가 길에 서서 안부를 나누었다. '동네'였다. 아주 어렸을 때만 보았던 풍경을 이곳에서 다시 보았다. 오기 전에는 이곳이 뭐가 좋아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그냥 오래 살았고, 살았으니 살 뿐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어보였다. 나무로 짠 창틀이 드르륵 거리며 여닫는 소리가 길에서 잘 들렸다. 주의를 조금 더 기울인다면 어느 집이었는지도 알 수 있을 만큼. 길은 좁았고 좁은 길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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