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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기영이

_봄밤 2014. 7. 13. 12:58





동네 친구 중에 기영이라고 있었다. 깡마른데다가 터울이 있는 형들 옷을 물려 입어 티셔츠가 항상 컸다. 뛸 때 가는 몸이 다 드러나도록 펄럭거리는 게 굉장했다. 어깨 죽지에 날개라도 붙은 것 같았고 또래보다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달려보면 비슷했다. 기영이는 윗말에 살아서 어울려 저녁도 먹고, 어른들 참에 끼어 옥수수나 막걸리를 한 입씩 먹곤 했다. 어느 날은 대청에 모여 참외와 수박을 먹었는데, 기영이는 수박을 포도와 헷갈렸다. 그것들은 여름에만 나고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른들은 웃으며 친절히 알려주었다. 기영이는 두 해 여름을 보내고 수박과 포도를 구분하게 되었다. 처음, 수박을 보고 포도라고 하던 날 나는 수박씨를 다 뱉으며 웃었다.

 

옆짐을 지고 으쓱하게 말하되, 나는 명사를 헷갈린 적은 없다. 수박은 수박이고 포도는 포도다. 이렇게 다른 걸 헷갈릴 수 있는지 의아해 하면서 그걸 가르쳐주는 어른과 기영이를 유심하게 살폈다. 수박은 아삭아삭하고 포도는 입속에 쏙 들어가지. 그러나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간다''온다'를 구분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가끔 화가 나서 꾸짖으셨지만,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더 틀렸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간다온다를 마구 헷갈려도 기영이는 웃지 않았다. 기영이는 어쩔 때 음, , 하며 설명해 주고 싶어 했지만 설명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옛날에 내가 뱉어놓은 수박씨가 까맣게 반짝였다. 나는 가끔 그 수박씨만큼 부끄러워졌다.

 

하루 다섯 번이나 간다온다를 틀리게 말한 날 턱을 괴고 오히려 헷갈리지 않는 사람들을 걱정했다. 부모님이 알려주실 때마다 진지하게 듣는 척 했고 들었던 당시에는 금방 구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틀리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내 틀림이 자랑스러웠다. 이 둘은 사실 구분할 수 없는데 어른들이 시시해졌기 때문에 가르게 된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건데, 내가 이말을 구분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있을 곳지금 있는 곳을 헷갈렸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머릿속으로 둘 다 넣어보는 기민함을 보였지만 여전히 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가 바뀌는 겨울방학중학교 소집일이었다무슨 종이를 받아들고 처음 보는 얘들 사이에 있다가 버스를 기다렸다기영이는 버스에서 갑자기 말을 뗐다말야, '간다' '온다'는 말이야네가 두 곳을 함께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까그게 틀린 것 같지는 않어그럼 고를 필요도 없는 말 같고기영이의 말을 듣는 순간 '너는 왜 그걸 헷갈리니'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했던 내 마음처럼 들려서 고마웠다그러나 중학교를 올라가는 판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나는 감추고 무심하게 답했다근데 나는 더 이상 헷갈리지 않아우리는 집에 가고 있잖아기영이는 그렇지. 끄덕이며 창밖을 봤다내가 있던 기억을 되짚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내가 없었던 곳의 기억을 기억할 수 있는 힘은 얼만큼 큰 힘이 필요한지 생각한다할 수 있는 일인가기영이의 펄럭이는 옷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하지 않았다'의 혐의가 짙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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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이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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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여기 오백 하나 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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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중에는 기영이란 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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