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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엔론>-엔론, 밖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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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판을 만들었던 '제플리 스킬링'이 원했던 것은 놀랍도록 소박했다. 딸아, 주식을 확인해야 해. 왜요? 그래야 아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왜요? 그래야 너한테 많은 걸 해줄 수 있으니까. 왜요? 왜냐면 아빠는 너를 많이 사랑하니까. 


단정한 검정색 슈트와 깔끔한 화이트셔츠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한다. 만질 수 없는 차트의 숫자, 기호로 남는 거래 장부로 곧 부스러질 부의 공간을 지을 뿐이다. 실재는, 우리가 땅에 닿을 때 무릎이 차게 물드는 것을 느끼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무게가 느껴지는 어떤짐을 들어야 하고, 그 무거움으로 몸이 괴로워야 한다. 내려 놓으면 내려놓아지는 것. 그런 것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을 꾸린다. 

<엔론>에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상상해야 한다. 경제 무너지고, 기업이 파산하며 회사에 다니는 가장이 절망하고 그 가족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뒤틀린 판에 의해 파멸로 가속하는 수많은 개인은 무대 위에 올라오지 않았. 그들은 무대 밖에서 삶을 사느라 올라올 시간이 없다. 오늘, 나는 연극을 보았고 연극 밖에 있는 이들을 생각한다. 내게 다른 이름이 있다면, 바로 그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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