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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한 시

_봄밤 2014. 5. 11. 20:30






낮은 더웠다. 이십칠도까지 올라갔다고 했나, 지상으로 솟은 역 주변에는 햇빛이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그림자와의 경계도 분명했다. 역 앞 폭이 좁은 골목에는 과일을 파시는 분이 모여 계셨고 골목을 다 벗어나기도 전에 지나치게 높은 건물이 있었다. 몇 층인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높은만큼 수가 많기도 했다. 모텔이었다. 한 시를 넘었을까. 앞서 걸었던 젊은 남녀가 그곳 중 하나로 들어갔다. 눈 앞에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모텔 정문을 들어가는 두 개의 마음을 생각해 보다가, 물론 길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인파 사이로 들어갔다. 


밤이 되어 생각하니 그들은 함께 있을 방이 없는 사람. 살 곳은 어딘가 있으되 함께 있을 공간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둘 만 있을 곳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그 무수한 사람들을 위해 역 근처 사람이 풀어지고 모이는 곳에 고층으로 모텔이 밝다. 이불이 치워진 방바닥을 본다. 언제 깔렸는지 모를 노란장판에 보증금이 몇 천. 그리고 몇 시간, 또는 하루의 방을 빌리려는 두 사람들이 어두운 건물 앞을 서성인다. 


병천에 있을 때. 모텔에 드나들던 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심코 있던 시간들이 많았다. 비치는 검은 스타킹, 엷은 색 면바지, 흙먼지로 뒤덮힌 작업복, 담배 냄새, 대여섯 살 아이들의 목소리. 지금 생각하니 그곳의 풍경이었다. 무엇을 보려고 했던 것 아니고, 답답한 안을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었다. 쪼그려 앉아 바람이 들던 슬리퍼,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를 말리던 저녁. 그곳에도 하루를 저무는 칠월의 노을이 다정하게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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