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들어줘 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대화라면 상상하기 좋겠다. 애인과 당신이 있고 애인의 말과 당신의 말이 있다. 애인의 듣기와 당신의 듣기가 있고 더 많이 듣고 싶어하는 사람과 더 많이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는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욕망이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위치로 설명할 수 있다. "나보다 네가 조금 더 높은 곳에 있을 뿐" 무겁게 상대를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는 늘 지상 가까운 곳에 있다. 말하기는 상대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상대를 마음한다고 여기거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에 대해 암묵적인 동의가 이뤄졌을 때 일어난다. 듣기는 어떤가. 상대를 알고 싶은 마음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생긴다. 말하..
엊그제 이 무렵이었다. 늦게 내렸다. 몹시 출출했고 어째서인지 국수가 먹고 싶었다. 면을 좋아하지 않고 더욱이 늦은 시간에 무엇을 먹는 걸 멀리했던 습관은 내심 놀랐다. 물리고 국수를 먹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늘고 따뜻한 면발, 얼마간 고개를 수그려야 먹을 수 있는 자세를 생각하니 어느 곳에나 들어가야했다. 눈에 들어오는 고깃집에 들어갔다. 국수가 있느냐고 묻는 좁은 어깨를 안내하는 주인은 저도 모르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이쪽으로 안쪽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그러나 메뉴판에는 냉국수만 있었다. 따뜻한 국물은 안되느냐고 물었다. 처연했을 것이다. 왠 고깃집에 고기를 시켜야 식사 메뉴로 고를 수 있는 국수를 거기에 따뜻한 것이 안되느냐고 묻는다. 그건 어렵다는 내려간 눈썹. 그러면서 길..
오른쪽은 북쪽을 향했을 때 동쪽과 같은 곳입니다. 오른쪽 어깨에서 오른쪽 목을 통과해 오른쪽 귀까지. 오른쪽이 아픕니다. 오른쪽이 바라볼 수 있는 공간, 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빈곳도 아픕니다. 오른 목을 지나는 턱 아래 임파선이 둥글게 부었습니다. 동생을 역까지만 데려다 주었고, 내일은 석이의 생일입니다. 부적을 믿지 않지만 석이가 전해준 빨간 표지만은 늘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간체를 읽지 못합니다. 물을 챙겨줘서 고마웠습니다. 나는 물을 잘 마십니다. 동생은 우유를 잘 마셔요. 서로는 바꿔서 먹지 못합니다. 도배가 깨끗한 집은 새 것 냄새가 너무 났습니다. 나는 문을 자주 열어두기를 당부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좀 꺼려지네요. 라는 말에서 거절의 의미를 읽지 못했고, 아가씨의 최선이 당신..
어제 아침 열 시부터 계속 졸리다. 한 번 제대로 깨질 않으니 무려 이박 삼일동안 자고 있는 기분이다. 바닥에 퍼질러져 있기, 누워 있기 엎드려 있기 등으로 몸 면적의 1/4은 늘 바닥과 밀착해 있었다. 그것을 떨치고 이 의자위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뺨을 때렸는가. 의자에 앉기까지 있었던 일을 적어보려고 한다. 여전히 잠이 2%는 들어 있는 것 같아 벌을 준다는 기분으로 차가운 팩(꾸덕꾸덕해지면 떼어내야 하는)을 발랐다. 있다가는 세수도 다시 해야한다. 이대로 삼십분은 춥고 표정없는 얼굴로 있어야한다. 일어나서 밥도 먹고 책도 읽고 했지만 흐리멍텅한 상태는 치워지질 않는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잠에서 깰 때마다 뭐라고 뭐라고 적어놓았더라. 살피니, 대체로 쓸데없는 말 가운데 왜 나는 바닥에 누워 있는..
아침에 결혼식이 있다고 해서. 나갔다. 중간에 한 번 더 갈아타야 하는데 모르고 출구로 나왔다. 전혀 다른 지형을 보고 놀랐고 경찰에게 물었다. 경찰은 이곳에 이마트가 있나요? 하면서 의아해 했지만 어쨌든 4번 출구로 가시면 되는거죠? 라며 4번 출구를 알려주었고 4번 출구를 찾으러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는 동안 이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마트는 없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내렸다. 길을 건너고 육교를 올라가 성당에 도착했다. 이미 식이 시작한 후라 문은 닫혀 있었고 거길 열고 들어 갈 마음이 없었다. 성당 안에서 책을 읽었다. 한 시간이 넘게 결혼식이 이어졌다. 어느 결혼식이나 밥이 맛없지만 특히 더 맛이 없었다. 한 입 먹으면 두 번 입맛이 달아나는 그런 맛이었다. 자리가 치..
이곳에 올라온지 이주 되었을 무렵. 학교가는 아침이었다. 거리는 제법 여름이 되려는 티를 내고 있었다. 내가 걷는 길은 거의 모두 처음 걷는 길이었는데 그 길은 곧 매일 걷는 길이 될 참이었다. 나무며, 카페며 그곳에 매일 세워져 있는 관광버스. 얼굴은 바뀌지만 매번 있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팔짱, 조금은 어색한 옷차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려면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야 했는데 신호가 무척 오랜만에 들어오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이 늘 있었다. 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를 읽고 뭔가를 써야지. 그런 생각이었을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소설가가 읽어주는 소설을 들으며 파란 불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 어깨와..
밤씨 뭐 먹고 싶어요. 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웃는 얼굴 때문에 하마터면 선배님 드시고 싶은 걸로요. 라고 할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말 없이 그냥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좀 바보같았겠지만 저런 소리를 안했으니 실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선배는 말을 천천히 하고 많이 한다. 가끔은 심심할까봐 여기까지 와서 저쪽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이 똑똑한 강모를 닮았다. (강모 이야기는 아직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선배는 섬세한 얼굴과 달리 '허허'하고 웃는다. 불상의 얼굴들을 보며, 이렇게 생긴 사람이 있을까 물었던 예전의 말을 거둔다. 단정한 얼굴은 불상을 닮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수인을 집고 결가부좌할 것 같다. 말을 걸면, '허허'하고 웃으면서 느린 말을 풀어 놓을 것 ..
담배를 얼마나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담배를 피는 이는 내 앞에서 숨을 쉬지 않았으면. 하는 정도라고 간단히 대답 할수 있다. 그가 어떤 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거리가 필요하다. 담배를 머금은 숨으로 내 몸이 괴롭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괴로워하면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남을 아끼지 못한다. 그보다는 내가 언제나 조금 더 많이 중요하다. 나는 아직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담배 피우는 배우자를 사랑하는 비흡연자들이 많이 때문이다. 살신성인이라는 말은 고래의 것이 아니다. 제 몸을 부수면서 사랑할 만한 사람이 있는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사회(성)이라는 이유로 몸의 훼손을 감내하길 바라는 시선을 어떻..
반가운 공간 대전 궁동 플레이북 북카페_서점+카페 3층에 있다. 계단을 올라가며 보는 그림도 쏠쏠자리도 널찍하고 좋다.그리고 책! 도서 기획전을 연다. 이번 달은 출판사 기획전에 전시되는 도서는 10%할인 서점의 기획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읽어볼 만한 책을 알 수 있고서가의 다른 책은 5%할인이니까도서 정가제 이후에 경쟁력 충분히 있을 듯. 후에 커피와 음료와 함께 책을 판매한다면 더더욱 좋을 듯.그림책도 있고 디자인 관련 책들도 있고.서가 구성이 좋다. 아직 책을 사는데 주춤주춤 하지만은. 이렇게 예쁜 공간이 있어서 많이들 보면 좋겠다 안그래도 놀 것 없는 곳에 이런 야무진 서점이라니! 야무진 사람들이겠지. 소식지도 발행한다. 책도 팔고요 커피도 팔고요 추우니까 들어와요 어서, *플레이북은 출판사도 운..
하루 종일 쓸모없는 글을 쓰고 문득 눈이 아득해져서 나가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옷을 채우고 후드를 썼다. 계단을 내려와 바닥을 디디려는 순간 수 많은 점이 한꺼번에 찍혔다. 당황했다. 고개를 드니 비가 이제까지 오지 않던 비가 현관을 디디자마자 내리는 것이다. 한 발을 내놨다가 호박모양의, 어깨를 폭 감싸는 우산이 지나는 걸 보고 우산을 가지러 올라갔다. 천으로 손잡이가 마감된 것은 고풍스러웠지만 무거웠고 안팍이 마구 보이는 비닐우산을 들었다. 무엇보다 가볍다는 미덕이 있다. 한 시간쯤 돌고 들어와 이렇게 흥분한 까닭은, 말도 안 되는 글을 하나 읽었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소설의 이름을 달고 이렇게 아름답지 않은 글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정밀한 기계가 쓴 것처럼 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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