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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_봄밤 2015. 2. 7. 00:23





엊그제 이 무렵이었다. 늦게 내렸다. 몹시 출출했고 어째서인지 국수가 먹고 싶었다. 면을 좋아하지 않고 더욱이 늦은 시간에 무엇을 먹는 걸 멀리했던 습관은 내심 놀랐다. 물리고 국수를 먹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늘고 따뜻한 면발, 얼마간 고개를 수그려야 먹을 수 있는 자세를 생각하니 어느 곳에나 들어가야했다. 눈에 들어오는 고깃집에 들어갔다. 국수가 있느냐고 묻는 좁은 어깨를 안내하는 주인은 저도 모르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이쪽으로 안쪽으로 자리를 안내했다. 그러나 메뉴판에는 냉국수만 있었다. 따뜻한 국물은 안되느냐고 물었다. 처연했을 것이다. 왠 고깃집에 고기를 시켜야 식사 메뉴로 고를 수 있는 국수를 거기에 따뜻한 것이 안되느냐고 묻는다. 그건 어렵다는 내려간 눈썹. 그러면서 길 건너 어떤 대폿집을 소개해 주었다. 저곳이라면 있을지도 몰라요.


고맙다며 튕겨져 나와 그리고 가니 과연 국수를 팔더라. 밤 늦게 혼자 들어와 국수를 찾는 치에게 더욱 상냥해 지는 것인지, 친절했다. 외투를 벗어 옆에 놓고 작지 않은 실내에는 몇몇이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는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썸을 타는 이들이 있었다. 여자가 예뻤다. 여자의 말도 안되는 설명에 남자는 아련한 눈빛으로 술인지 뭔지를 마시고 여자는 이제 반쯤의 발음을 탈락시키고 있었다. 너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좋지는 않다. 라는 이야기라고 추릴 수 있으려나. 저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멸치육수는 진하게 우러나 좋았다. 국수가 조금 더 삶아졌으면 좋았을텐데, 거의 다 먹을 무렵 완전히 익어서 조금 아쉬웠다. 여전히 썸을 타는 아련한 남녀는 테이블에 남았고, 국물이 아직 따뜻한 국수를 두고 나왔다. 열두 시가 넘었다. 


그런데 어제는 짜장면이 먹고 싶은거다. 짜장면이라니, 놀라웠던 마음을 남겨야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짜장면은 아이의 음식, 이제 짬뽕을 먹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건 오래도록 지켜졌다. 해서 아주 가끔 먹기는 하지만 부러 시키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마저도 짬뽕을 지나 굴짬뽕을 시키는 마당. 시원하고 탁한 흰색 국물을 선호하게 된 나로서는 짜장면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입맛이었다. 갑자기 애라도 되고 싶은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늘은 짜장면을 먹어야겠다. 먹지 않고는 집에 들어갈 수 없다. 맛있는 집은 상관이 없고 역시나 가깝고 짜장면을 파는 것이 확실한 가게면 된다. 의외로 혼자서 먹는 사람들이 있다. 면을 먹을 때는 어깨와 고개가 그릇과 더 가까워지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엊그제 간절했던 국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짜장면이 불러오는 일들이 지나갔다. 오이라든가 완두콩, 검정을 돋보이게 하는 녹색과 언젠가 모임에서 가장 빨리 먹어서 어른들을 놀래게 했던 웃음이며,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어른들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일이며, 대학때 천오백원인가 이천오백원인가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먹었던 짜장면 집, 짜장면이 좀 짜다. 라는 생각을 하며 물을 먹었다. 


다시 배가 고프고 엊그제의 국수나 짜장면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배가 고픈채 잠을 자게 될거다. 오늘로 두 건의 계약이 파기 되었다. 잘못을 따질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다. 저번에 만난 어느 부동산 실장님은 모텔모텔모텔과 술집술집술집 사이에 있는 부동산에 나왔다. 담배 냄새가 지독했고 침자국이 마르기 전에 또 침자국이 진해지는 아스팔트였다. 이 근방에 좋은 집이 있었다며 아쉬워하는 얼굴에 동조 할 수 없었고 가까이 성당이 있지만 믿을 수 없는 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집이 생각났다. 여기 눈이 오면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썰매타고 내려와야지. 


썰매나 타고 싶구나. 입춘도 지나서 눈도 다 녹는데 썰매가 타고 싶다. 배가 다시 고프고 

무엇이 먹고 싶은지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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