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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맛

순두부 찌개

_봄밤 2014. 11. 11. 23:56




밤씨 뭐 먹고 싶어요. 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웃는 얼굴 때문에 하마터면 선배님 드시고 싶은 걸로요. 라고 할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말 없이 그냥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좀 바보같았겠지만 저런 소리를 안했으니 실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선배는 말을 천천히 하고 많이 한다. 가끔은 심심할까봐 여기까지 와서 저쪽의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이 똑똑한 강모를 닮았다. (강모 이야기는 아직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선배는 섬세한 얼굴과 달리 '허허'하고 웃는다. 불상의 얼굴들을 보며, 이렇게 생긴 사람이 있을까 물었던 예전의 말을 거둔다. 단정한 얼굴은 불상을 닮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수인을 집고 결가부좌할 것 같다. 말을 걸면, '허허'하고 웃으면서 느린 말을 풀어 놓을 것 같다.

새로운 무리에 가면 서로를 맞추느라 여러가지에 놀라곤 하는데 유독 이곳에서 나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 크게 놀란다. 어제 점심만 하더라도 그렇다. 건너편 앉은 다른 선배가 정태춘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정태춘이라는 음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말 그대로 음가)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본 적은 없으며, 알고 있지도 못했다. 이름은 들어봤어요. 라고 대답했으나, 그냥 모른다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정태춘에 대한 이야기는 흘러서 강변 가요제와 대학가요제로 줄기를 뻗었는데, 거기에서 어느 해 누가 수상을 했느냐는 구체적인 연도와 당시 가수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때 어떤 분위기였는지를 해당 엠씨들의 옷차림에서 유추해 오는데, 그러니까 나로서는 당신의 분위기라던가, 그때의 노래라던가, 옷차림은 더더욱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그야말로 깜깜한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없는 긍정의 표현만 하던 내게, 밤씨는 어떤 음악을 좋아해요. 라고 선배가 물어왔다. 저는요 하고 침을 한 번 삼키고는 

검정치마를 말했다. 그러자 조금은 의외라는 느낌과 그러나 긍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제스처를 저도 모르게 취하며 선배는 저도 검정치마 좋아해요. 라고 입을 뗐다. 공연과 콘서트 이야기가 잠깐 오가고 선배는 생각났다는 듯 그렇다면 <음악하는 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나요 하고 그의 문제적 가사를 물었다. 대답을 잠깐 생각하는 사이 건너편에 앉은 또 다른 선배는, 요새로 치자면 윤종신이나 이적이나 이같은 이들도 모두 인디신으로 데뷔를 했을 거라는 소위 인디적 얼굴을 이야기하며 그것과 상관없이 음악적 다양성, 성취, 감수성이 통용되었던 이전의 세대와 지금의 세태를 양분하며 씁쓸한 조소를 유머스럽게 섞어 말했다. 잠깐만의 공백에도 옛스런 노래로 키를 돌리는 화제의 무법자인 건너편 선배의 입담이었다. 잠시 후 나는 정신을 차려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검정치마의 매력 아닐까요. 그것도 대답이라고 말을 했다니 <음악하는 여자>를 말하자면 넌 음악하지 말고 가서 시나 쓰라는 그런 가사인데, 아니 시가 아니라 시집이었던가. 여기서 '시집'은 거의 중의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검정치마가 이런 가사를 썼다는 것은, 아무래도 여러가지 그의 정신세계를 보여준달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느냐 라는 물음일 수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 선배가 바로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는데 나는 그 점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선배의 물음이 크게 왔다. 그러나 문제적 가사는 일부였고 역시 통으로 들어봐야 하지만, 그럼에도 물음을 들었던 순간 좋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뜻을 밝히는 데는 생각이 모자랐으므로. 이점에 대해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넘어가려고 했던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검정치마를 좋아한다는 말에 책임을 잘 지지도 못했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그의 가사의 논란을 뚫고 논리를 획득해 안전을 확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하필 그의 주옥같은 노래들 중에서 그 노래를 택했던 것은, 아무래도 검정치마를 예쁘게 보지 않는 선배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뒤늦게 든다. 해서 나는 그날 별로 알지 못하는 밴드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며 순두부를 밥에 눌러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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