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時가 없어진다면 김행숙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갔으니 8시처럼, 목요일 저녁처럼, 여름날의 긴 오후처럼 돌아오는 중이겠군요 봄에 여름이라고 부르고, 여름에 가을이라고 부르고, 가을에 겨울이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당신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둥근 것들, 해와 달,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는 구두들의 닳은 굽, 뉴욕제과점 모퉁이를 돌아 언덕을 오르는 마을버스들, 자꾸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 그러나 나는 어느샌가 한눈을 팔게 됩니다, 미안해요 그사이에 8시가 없어지면 당신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겠어요, 8시가없어지면 8시 5분이, 9시가, 없어지고, 다음날 아침이 없어지고, 여름날의 소낙비가 없어지고, 가을날의 천둥이 없어지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없어지고, 겨울 눈꽃축제가 없어지고, 새싹이 연..
둘에 하나는 제발이라고 말하지 황병승 천장에 붙은 파리는 떨어지지도 않아 게다가 걷기까지 하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바닷가에 갔지 맨 처음 우리가 흔들렸던 곳 너는 없고 안녕 인사도 건네기 싫은 한 남자가 해변에 누워딱딱 껌을 씹고 있네 너를 보러 갔다가 결국 울렁거리는 네턱뼈만 보고 왔지 수족관 벽에 머리를 박아대는 갑오징어들 아프지도 않나 봐유리에 비치는 물결무늬가 자꾸만 갑오징어를 흔들어놓아서 흑색에 탄력이 붙으면 백색을 압도하지만 이제 우리가 꾸며대는 흑색은 반대편이고 왼손잡이의 오른손처럼 둔해 파리처럼 아무 데나 들러붙는 재주도 갑오징어의 탄력도 없으니 백색이 흑색을 잔뜩 먹고 백색이 모자라 밤새 우는 날들 매일매일의 악몽이 포도알을 까듯 우리의 머리를 발라놓을때쯤 이마 위의 하늘은 활활 타고 ..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시ː리즈 내 마음도 몰라주고 합정 씨클라우드기획 : 심보선 외 13인의 시인들 이혜미, 이현호, 한인준 시인이 수두룩했다공기에 취할 수 있다면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문학동네, 2014 6. 첫 시집을 낸 소회, 소감, 그런게 궁금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것을 하나로 묶는다고 여전히 같은 높이의 어깨라는 걸, 재로 떨어지는 담배의 날이 더 빠르게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 번 더 말해주길 바랬던 게 사실이에요. 나는 우리라고 할 수 없는 우리에서 빠저나와 숨죽여 듣는 일 밖에 없었어요. 그저 시를 듣는다는 이유만으로 목이 말랐거든요 당신이 '라이터를 빌립시다'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제대로 라이터에 불을 붙여본 적도 없지만 손이며, 깡마른..
나무의 경제 박진성 불안을 학습하느라 저 나무들, 단풍 듭니다 오늘 보내주신 한 달 치 생활비는 잘 받았습니다 응급실 형광 불빛 밝히느라 내 신경 물관 다듬느라 그 돈은 쓰이겠지만, 악화와 회복의 지루한 공방전 사이 나의 생활이 있습니다; 헐벗은 채로 겨울 지나는 나무의 상징 배우느라 정신없이 바람 불고요 나무의 경제는 햇빛과 물과 공기를 제 몸으로 운용하는것입니다 제 몸 함부로 버리지 않고 계절과 한 치의 틈도허락 않고 풍경을 받아먹고 스스로 풍경이 되는 나무의기술, 나는 오늘 단풍 든 은행나무입니다 어떤 이력서도 내 병력을 받아주진 않지요 발작하는 나무에 새들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발작이 오려 할 때마다상처의 주름 내 몸에 기록하려 잔뜩 긴장합니다 현금도계좌 이체도 세금 원천 징수도 아닌 햇빛과 물과..
석아 마당의 어원이맏+앙이래 _뭔 뜻이람 '맏'은 큰, 으뜸이라는 뜻이고 '앙'은 장소를 뜻하는 접미사래_신기하넹 _처음 알았다응 누나도 _누나 그전에 알려준 그거 뭐지어떤거 _낯선 이의 이름으로 사흘을 먹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_아 왜왜 생각났나 _웅_좋은 말 같아 이건 미역국이고 이건 건새우볶음이건 참치계란부침이야 오늘 이 쌀밥은뼈처럼 희고김치는 중국산이라 망자의 모발을 마당에 심고이듬해 봄을 기다린다는중국의 어느 소수민족을 생각하는 오늘 「오늘의 삭단-영(暎)에게」부분. - - 내 다리 어딘가에 유리가 박혔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그 무렵부터다. 작은 유리조각이 다리 어딘가에 박혀서 피를 따라 온몸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유리가 동생의 머리 위로..
손은 손을 찾는다 이문재 손이 하는 일은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 마음이 마음에게 지고내가 나인 것이시끄러워 견딜 수 없을 때내가 네가 아닌 것이견딜 수 없이 시끄러울 때 그리하여 탈진해서온종일 누워 있을 때 보라.연기가 삶의 끝인 것 같을 때내가 나를 떠날 것 같을 때손을 보라.왼손은 늘 오른손을 찾고두 손은 다른 손을 찾고 있었다.손은 늘 따로 혼자 있었다.빈손이 가장 무거웠다. 겨우 몸을 일으켜생수 한 모금 마시며 알았다.모든 진정한 고마움에는독약 같은 미량의 미안함이 묻어 있다. 고맙다는 말은 따로 혼자 있지 못한다.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엊저녁 너는 고마움이었고오늘 아침 나는 미안함이다.손이 하는 일은결국 다른 손을 찾는 것이다.오른손이 왼손을 찾아가슴 앞에서 가지런해지는 까닭은빈손이 그..
신년회 이영주 우리 중국 절벽에 가서 뛰어내리기 내기를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길을 잃었다는 것뿐 태어난 곳도 사라진 곳도 인간의 문자로는 남길 수 없겠지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한번 부른 노래를 모두가 부를 때까지 계속될 거야 바람이 오는 길목에선 손을잃은 석공들이 가슴으로 벽을 쌓아 올리고 있다고 우리 그 벽에 올라가서 무너뜨리기 내기를 할까 어느석공이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졌는지 뾰족한 곳에서부드러운 곳으로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중국에 가자 얼음이 오는 길목에선 눈을 잃은 석공들이 서로의 혀를 핥으며 잠을 쌓아 올리고 있어 발톱이 빠지지 윗도리가 젖지 음악을 따라 들어가면 길을 버리게 돼어떤 눈을 하고 있을까 절벽에서 손을 놓을까 말까아무도 따라 부르지 않아도 노래를 부를 거야 석공은묵묵..
높은 나무 흰 꽃들의 燈 이성복 근심으로 가는 짧은 길에 노란 꽃들이 푸른 회초리 같은 가지 위에 떨고, 높은 나무 흰 꽃들이 燈을 세운다어디로 가도 무서운 길의 어느 입구에도 흰 꽃들의 燈이자꾸 떨어지고, 갈수록 어둠 한쪽 켠은 환하고 편하고,병풍처럼 열리는 숲의 한가운데서 오래 전 새소리 자지러진다 ─용서받지 못했던 날의 잘못이이마의 못처럼 아프다 아이들아,우리 살던 날들의 웃음을다시 웃는 너희 얼굴에수줍은 우리, 그림자 진다 이성복, 『남해금산』, 문학과지성사. 1986. 7. ─용서받지 못했던 날의 잘못이이마의 못처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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