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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경제-박진성

_봄밤 2014. 6. 25. 01:09



나무의 경제




박진성



 불안을 학습하느라 저 나무들, 단풍 듭니다


 오늘 보내주신 한 달 치 생활비는 잘 받았습니다 응급

실 형광 불빛 밝히느라 내 신경 물관 다듬느라 그 돈은 쓰

이겠지만, 악화와 회복의 지루한 공방전 사이 나의 생활

이 있습니다; 헐벗은 채로 겨울 지나는 나무의 상징 배우

느라 정신없이 바람 불고요


 나무의 경제는 햇빛과 물과 공기를 제 몸으로 운용하는

것입니다 제 몸 함부로 버리지 않고 계절과 한 치의 틈도

허락 않고 풍경을 받아먹고 스스로 풍경이 되는 나무의

기술, 나는 오늘 단풍 든 은행나무입니다


 어떤 이력서도 내 병력을 받아주진 않지요 발작하는 나

무에 새들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발작이 오려 할 때마다

상처의 주름 내 몸에 기록하려 잔뜩 긴장합니다 현금도

계좌 이체도 세금 원천 징수도 아닌 햇빛과 물과 바람으

로 오는 생활비,


 나의 소득세는, 나무에 기대어 우는 아픈 사람들 몫이

마땅합니다




박진성, 『아라리』, 랜덤하우스, 200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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