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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時가 없어진다면
김행숙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갔으니
8시처럼, 목요일 저녁처럼, 여름날의 긴 오후처럼 돌아오는 중이겠
군요
봄에 여름이라고 부르고, 여름에 가을이라고 부르고, 가을에 겨울이
라고 고쳐 부르는 것이 당신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둥근 것들, 해와 달,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는 구두들
의 닳은 굽, 뉴욕제과점 모퉁이를 돌아 언덕을 오르는 마을버스들, 자
꾸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
그러나 나는 어느샌가 한눈을 팔게 됩니다, 미안해요
그사이에 8시가 없어지면 당신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겠어요, 8시가
없어지면
8시 5분이, 9시가, 없어지고, 다음날 아침이 없어지고, 여름날의 소
낙비가 없어지고, 가을날의 천둥이 없어지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없어지고, 겨울 눈꽃축제가 없어지고, 새싹이 연둣빛 새싹이,
옆집은 한달 보름째 빈집입니다, 세상의 모든 옆집이 빈집이면 내
가 어떻게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어요
캄캄한 하늘에 당신이 무한한 원을 긋고 있는 중이라면
김행숙, 「8時가 없어진다면」, 『창작과 비평』, 2014,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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