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오리 일곱 마리가 연못에서 참방참방" 그림책은 '아기 오리 일곱 마리'로부터 시작한다. 다시 한 번 말해볼까. 아기 오리는 '어미'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참방참방, 이라는 귀여운 말에는 어떤 근심도 없이 태평하다. 표지에서는 일곱 마리 아기 오리는 똘똘 뭉쳐 수면 사방을 내다보는데, 서로를 제법 단단히 지키는 것 같지만, 위험은 그 밑에 도사리고 있었다. 악어는 수면 아래에서 뽀글뽀글 숨을 쉬며 한눈에 아기 오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그림에 "한입에 꿀꺽!"이라는 (!느낌표까지 가미된) 제목. 긴장을 이렇게 단순한 장면에 한 줄의 글귀만으로 이뤘다. 책을 작은 손으로 집어 든 아이가 있다. 자신처럼 작고 귀여운 아기 오리를 바라볼 너덧 살의 아이. 이 나이 아이의 내면은 '초자아'라는 ..
1. 어두운 갈색에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이 색은 마을 입구에서 비를 맞는 장승의 부라린 눈이고, 색색의 줄을 가지마다 걸친 성황당 나무의 단단함이다. 연기가 올라오는 지붕, 낮은 기둥을 이루는 손 때이며 다른 소문이 침범할 수 없는 방 입구의 붉은 글씨다. 지금은 사라진 마을, 그곳에 살았던 이들을 단단히 결속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시작은 달이다. 달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일까. 누구나 달이 있다고 하늘을 가리켜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을 끌어내 '여기 달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달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아닐까 싶다. 달이 있다고 증명해야 하는 것은 과학의 일이 아닌가 하며 어물쩍 물러선다. 그러나 시인은 이지러지는 유약에 묻는다. 수천 ..
손가락을 펼치면 여러 개의 사 이 가 생 긴 다 손가락 사이로는 무엇도 잡을 수 없으므로, 손가락은 자신을 지나가는 모두를 잡지 않아도 되었다. 손가락은 좀 자유로워졌고, 조금 외로워졌다. 당신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한 손에 다 있다.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손과 발에는 오리의 발처럼 갈퀴가 있었다고 한다. 후에 갈퀴 부분이 사라지면서 사이가 있는 손가락의 형태를 이룬다고 한다. 지금의 '나'를 이루기 위해 세포의 ‘예정된’ 죽음이 있었다. '아포토시스'. 해서 누구나, 죽음으로써 탄생하는 생을 산다. 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따뜻한 손인 줄 알았는데, 사라진 자리가 삶을 지탱하고 있다. '사탕'은 달콤하고 황홀한 말, 완벽(죽음)에 이르고 싶은 산 사람의 목표이고. '차가운 사탕'은 그 말들을 그만..
세상에 "풀써는 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 있다. "풀써는 일"이 뭐인고 하면 '비탈진 밭에 흙이 비에 쓸려가지 않게 하고 땅을 걸구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서 '풀'은 우리가 아는 풀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함께 이른다. 쉽게 말하자면 마을 공동 퇴비를 만드는 작업으로, 서로 품을 팔아서 농사에 쓰일 풀을 작두로 썰어 마련하고 썩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지역 중에 강원도 일대와 경상북도 봉화군 일대에서 채록한 풀써는 소리를 소개한다. 강원도에서는 풀을 '심하게' 썬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여러가지 환경이 척박하여 지을 수 있는 농사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퇴비를 공들여서 마을 단위로 준비를 많이 했을지, 그래서 풀을 '심하게' 썰었던 건지도 모른다. "풀써는 소..
,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없는 다섯 살의 마음이 있다. '무모하다'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이 말은 앞 뒤를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으로. 시간의 층위를 어지럽힐 때 쓰인다. 가령 어른들에게 '아이의 눈으로 보세요'라고 조언하는 것이 그렇다. 이 조심스러운 청유에 아이의 눈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어떤 어른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을 하지 못한다. 간신히 키를 낮춰 아이의 시야를 엿볼 수 있을 뿐. 그게 가능했다면 오래전 어린왕자가 우주를 떠돌 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을 한 명은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전에서 어른들이 증명하듯이, 어른은 자신만의 눈을 갖고 보기에도 벅찬 사람들이라 자신이 지나온 것을 망각하고 앞으로 밟게 될 시간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
하재연,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문학과 지성사, 2012.1 '선'이 '면' 되는 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면을 돕는 선. 점을 지나온 선. 이러한 선을 나는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가장자리는 모든 존재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가장자리'가 있다. 곤란한 당신은 이 순간 내게 공기나 우주를 말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좀 땀이 나겠지. 어설픈 최선을 다하면 이렇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름을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지 않을까.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지점이. 그때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지나는 순간 더 이상 공기라고 부를 수 없고 우주라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아직 '나'..
, 이성복,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문학동네. 영화,『도희야』 원장면들어느 날 당신은 벌겋게 익은 수박 속을 숟가락으로 파먹다가 갑자기 그 수박을 길러낸 식물(그걸 수박풀이라 해야 되나, 수박나무라 해야 되나), 그저 잔가시가 촘촘히 붙은 뻣센 너울과 호박잎을 닮은 잎 새 몇 장으로 땅바닥을 기는 그 식물이 불쌍하게 생각된 적은 없는지. 여름날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땅속 깊이 주둥이를 박고 벌컥벌컥 물을 길어올려 벌건 과즙으로 됫박만한 수박통을 가득 채운 끈기와 정성은 대체 어디서 전수받았으며,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단지 쥐똥만한 제 씨알들을 멀리 날라줄지도 모를 낯선 것들에 대한 대접으로는 도에 지나친, 그 멍청한 희생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 250p 연..
조현준/현암사/2014. 4 살 수 있는 삶의 가능성* 젠더는 한 개인에게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며, 한 개인의 인간됨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젠더는 내가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사회와 협상하려는 나의 노력이다. 214 이 책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기 위한 책이다. 『젠더 트러블』을 개설하는 1장과 주디스 버틀러가 각 연구자들의 논의를 비판한 5장의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버틀러의 기본적인 입장은 개략적이지만 성실하게 소개했다. 이것은 조금 길지만 다음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옮길 필요가 있다. 그의 입장은 '결정적인 토대를 가지는 것으로 보이는 남녀의 성차, 통일되고 안정된 범주로서의 여성, 근친애의 금기에 전제된 이성애 중심주의는 사실상 지배 이데올로기가 반복된 규제적 이상의 각인 행위..
'눈알'은 척추동물의 기관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척추동물인 사람의 눈을 가리켜 '눈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른 척추동물을 살펴보자. 개,소,말,고양이 등등 다르지 않다. '눈알'이라고 하지 않는다. '고양이 눈', 이라고 하지 '고양이 눈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때로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요리를 보고 '조기 눈알'이나 '동태 눈알'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것은 생선을 자주 만나지만 우리의 삶이 생선과 가까운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생선과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또는 아주 작은 것을 이르는 말로 '모기 눈알'이라고 '눈알'을 쓰는 것 같다.(엄밀히 말해 모기의 눈은 '눈알'이라고 할 수 없다)그러나 우리는 생선처럼 역시 모기와도 멀다. 몸으로는 아주 가깝지..
데루오카 이츠코/나는 사회인으로 산다/궁리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문장을 쪼개 보자.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이 문장을 한꺼번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들은 1.'사회인'이며 2. '나'와 '산다'를 한꺼번에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사회인이 무엇인가' 물으면 대부분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경제 활동을 하는 이들'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위의 문장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떤 이들은 1.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자아라며 우긴다. '이건 내가 아니야' 라면서 '나'라는 주어를 빼는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2. 한편으로 다른이들은 그래 내가 살고는 있는데 이게 사는 건가? 라는 물음으로 '산다'를 주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미래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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