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잡이를 가장한 운명과 인간의 분투기-모비 딕 이를테면 산을 아는 이는, 산의 생김을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 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던 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은 머리속에 각인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같은 곳에 올라도 저마다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감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경험은 양보할 수 없고, 대신 할 수도 없다. 산을 직접 올랐던 이와 올라간 이야기를 읽어냈을 뿐인 이를 같은 결코 같은 선상으로 놓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잘 옮겨 놓은 이야기를 듣는 이는 모르는 사람처럼 산을 세모꼴 험준함과, 초록으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체험을 미..
마지막까지 울어야, 소리다-『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신의 예언은 방울이 울리고,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 비로소 말해진다. 소리의 그림자까지 사라져야 목소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크게 말하는 힘이 다 멈추고, 방울이 울리지 않는 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을 시라고 믿는다. 우리는 큰 소리에 내일을 당황하며 쉽게 자지러지지만, 어떤 이는 그 밑에 깔린 그림자 같은 소리를 듣고 전한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신의 말은 다 전해질 수 없다. 대신, 꿈을 보고 온 사람이 내일을 이야기 할 때가 있는데. 내일의 일을 오늘 알려주어도 오로지 내일이 되어야 아는 이들에게 소용없는 일이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말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내일의 기미를 살피는 걸음. 그 걸음은 우리..
반주 없이 울리는 더블린의 음악회 - 어떤 어머니 데블린 양은 홧김에 커니 부인이 되었다. p181 홧김에 이름을 바꾼 여자를 적어도 셋은 알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금새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대게 '적령기'에 지면서 결혼을 했다. 그녀들은 결혼하기 전 남자의 외모와 재력이 그리는 낭만을 셈하고, 그것에 가려진 성품은 흘리고 인생의 뷰를 그렸다. 커니 부인이 그랬다. 그러나 그녀는 현명하게도 욕망이 가진 허물을 비교적 일찍 알았다. '결혼 생활 1년 후 커니 부인은 그런 남자가 오랫동안 함께 살기에는 낭만적인 남자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p182 여기서 '그런 남자'에 대한 부연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자면 너무 슬플테니까. 그녀는 자신이 가졌던 욕망을 건실한 ..
언제든지 살아있을 준비가 되어있다 : 제목이 문제였다. 이렇게 수식으로 '맞춰 보시오'하며 문제 내는 작가는 없었다. 수식을 보자. 오른쪽 변에 있어야 할 문학은 어디로 간 것이며 문학은 병과 더하면 사라지는 이름인 것인가? 아니면 혹시 문학은 0과 치환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수식의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이것을 읽는 독자일 뿐일 것이다. 볼라뇨, 그가 낸 문제에 골몰해 보기로 했다. 어떤 계산도 필요 없이 그저 종횡무진한 입담을 따라갈 뿐이다. 이야기는 볼라뇨가 병원에서 진찰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프랑스 문학이야기로 넘어가는데, 프랑스 문학의 시인들에 대해 읊더니 말라르메를 꼽는다. 말라르메 시를 같이 읽자고 하더니 보들레르로 넘어간다. 다시 좋지 않은 자신의 병세에 대..
기.시.감. 이 명백함을 지울 수가 없다 빛을 다 흡수해 버린 듯 검은 사람이 보도블록을 걸어간다. 활달한 걸음과 한 손에 들린 책. 상반신은 보이지 않고 대신 뒤편으로 그림자가 완전하게 서있다. 그림자의 건장한 체격으로 말미암아 걷는 사람을 ‘그'라고 불러본다. 그는 왼편으로, 왼편 상단으로 곧 사라질 참이다. 이 프레임에서 너덧 발자국만 더 걷는다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림자. 한가운데서 사선으로 시선을 가르는 그것은 발뒤꿈치에 붙어 물끄러미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보도블록 위에는 그림자만 길게 남겨질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낮이 저물기 시작했다. 그가 걸어 나가고 그를 바라보는 그림자만 남는다. 당신과 나의 어제를 그만두어도 오래 남는 저릿함처럼. 불멸은 불노가 아니..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멍을 멍으로 두기. 사라지게 두고 싶지 않는 상흔의 기록 존재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나’라는 이름과 부모가 부르는 ‘자식’으로서의 이름을 갖는다. 이름 두 개로 시작. 관계에서 비롯된 이름의 증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에서 시인은 세 개의 이름을 산다. 그것은 ‘딸’과 ‘애인’과 그리고 ‘나’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약간의 변주만 가한다면 누구나 오래 지지고 있을 이름이기도 해서 시인의 이야기에서-나의 이야기로 오는 길이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온전한 음악일리 없다는 예감, 무너진 호칭으로 시작되는 제목에 고개가 무겁다. 활인지 톱인지, 아니면 줄을 다 끊어버리고 스스로 악기가 되어 속을 파내..
개미 혹은 마야, 마르크스 혹은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을-학습용 만화시장에-적합한 기획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의 성공을 다시 한번 부흥시키기 위해 만화로 옮겨 놓은 것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이것은 슬쩍 본 그림에서 비롯된 비호감에서도 기인했다. 인물의 비율이며 인상이며, 그림이 이게 뭔가?(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잘 못 그리는 듯한 그림은 [작화는 이야기를 도울 뿐]을 실천하려는 김수박의 고도의 계산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적당히 못 그린 작화는 지문에 집중을 방해하지 않으며, 만화의 구성은 지문을 쉽게 이해하고 진행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오해를 반성하며 쓴다. 언젠가 둘러 앉은 저녁에서 에 관한 이야기를 할 가족을 상상하며 적는다. 단언컨데,..
제3인류-거대한 이파리와 빈약한 줄기 소설을 읽기 전 그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중고등학생을 벗어나면서부터 그의 책을 보지 못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뇌』이후로 발간되는 소식만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궤적. 그의 소설에 대한 기억도 '중고등학생 때'에서 '머물러 있다는 것'것을 점검했다. 그를 만나기전 나의 준비는 읽지 못했던 그의 전작을 나열하는 것과, 『개미』를 읽고 느꼈던 흥미진진함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었다. 『제3인류』는 중고등학생 때의 향수를 불러왔다. 그의 세계는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력적이고 젊고 똑똑한 남녀 주인공이 나오며, 이야기의 전개가 그럴듯 하지만 급작스럽고, 그렇지만 잘 읽히고, 추리·모험의 형태를 띄지만 연애이야기도 물론이며, 몇 백 페이지를 끌고 나가는 패기가 있..
새로운 계급의 확인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이를 말한다. 이 새로운 이름은 그저 부자로 뭉뚱그려졌던 부자 중의 부자, 0.1%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그들의 존재는 알았으나 그들의 문화, 삶,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 등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플루토크라트를 알아가는 동시에 내가 있는 세계가 그들에 의해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알린다.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있는 자본의 세계에서 세세하게 그들의 영향을 꼽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국가와 국가가 정치적인 협정으로 인해 영향을 주고받는 것 보다 더 가시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막대한 영향력은 설사 자본주의가 통용되지 않는 곳이라도 미쳐 있을 것 같다. 플루토크라트의 목차 책은 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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