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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 없이 울리는 더블린의 음악회 - 어떤 어머니



데블린 양은 홧김에 커니 부인이 되었다. p181



 홧김에 이름을 바꾼 여자를 적어도 셋은 알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금새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대게 '적령기'에 지면서 결혼을 했다. 그녀들은 결혼하기 전 남자의 외모와 재력이 그리는 낭만을 셈하고, 그것에 가려진 성품은 흘리고 인생의 뷰를 그렸다. 커니 부인이 그랬다. 그러나 그녀는 현명하게도 욕망이 가진 허물을 비교적 일찍 알았다. '결혼 생활 1년 후 커니 부인은 그런 남자가 오랫동안 함께 살기에는 낭만적인 남자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p182 

여기서 '그런 남자'에 대한 부연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자면 너무 슬플테니까. 그녀는 자신이 가졌던 욕망을 건실한 그와 결혼하면서 꺼뜨렸다고 생각했지, 딸의 앞날과 바꿔 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읽어보면 너무나 흔한 이야기여서 비극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들어가기 전에 제목이 가린 제목을 읽어보자. 커니 부인이 대변하듯 어머니는 '그러한 욕망'을 가졌던 '여자'이다. 그리고 '어떤'이라는 말이 갖는 시치미, 그러나 모두 뒤꽁지에 달고 다니는 것을 시치미라 할 수 있을까? '어떤'은 '아는'으로 바꿀 수 있겠다. 제목으로 읽은 제목 '아는 여자'. '어떤 어머니'가 두루뭉술 말하는 진면목은 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여자'일 것이다. 


4회로 이뤄진 음악회를 꾸리면서 벌어지는 곤경은 뻤대는 어머니가 딸을 앞세워 앞길을 망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여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그놈의 으원회'와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흘러핸 씨가 함께 빗는 헤프닝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문예 부흥 운동이 유행했던 20세기 초 아일랜드, 그것이 얼마나 우스꽝 스럽고 험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있다. 여성차별의 문제를 앞세워 자신의 정당함을 화난 얼굴로 대변하는 커니 부인의 표정, 그러나 혼동하면 안된다. 주인공은 누구보다 '돈'이라는 욕망이었다는 것을. 그의 지위 아래 연주된 음악회에 들어가 보자.

 

 문예를 부흥 시키자는 음악회를 위해 자신의 딸을 이용했으나 실은 자신의 돈을 부흥시키려는 커니 부인의 속내와 어리숙한 딸을 앞세워 빚어내는 촌극. 단순히 돈, 돈하는 커니 부인을 흘겨보기 전에 흘러핸 씨는 노여워 하지 말고 음악회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이해시켜야 했으나 그는 절룩였다. '협회' 사람이었으나 문서를 흘리고 일정에 끌려다녔다. 앞장서 음악회의 일정을 꾸린 이가 다름 아닌 커니 부인이었으니, 어떤 이해를 누구에게 시키는 것을 바랄까만은. 음악회는 주중에 사람 드문해 실패하게 되고, 협회는 금요일 공연을 하지 않고서 토요일에 성대하게 꾸리고자 한다. 그러나 커니 부인은 그것이 성대하든지 말든지 금요일 공연을 하지 않더라도 처음에 4회로 계약한 딸의 반주 비용을 모두줄 것을 요구한다.

 

무대 뒤에 음악인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음악회가 무엇인지, 그런 곳에 돈은 왜 내야 하는 것인지, 무료 입장권을 겨우 겨우 구해 모여들었던 더블린 사람들이 있다. 초만원은 아니더라도 떠들썩 하게 모인 대규모 음악회. 반주자인 딸이 커니 부인과 반反하는 어떤 자긍과 문예인으로서의 소양을 갖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과분하다. 커니 부인에게 나머지 돈은 들어 오지 않았고, 그녀는 딸의 외투를 집어 들어 나가고 만다. 딸 역시 외투처럼 나간다. 


소설은 노래가 울리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끝이 난다. 그래서 20세기 초 더블린의 음산한 안개를 뚫고 울리거나, 울리지 않았어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남는다. 반주 없는 노래는 당시 힘겨웠던 문예 부흥 운동의 현주소인 것이다. 한번도 듣지 못한 이 노래, 오늘날에도 귓가가 익숙하게 울리고 있다는 사실에 당신은 놀랄 것인가? 욕망에 밀려서 절룩이는 가치들의 들리지 않는 협연을 말이다.


+사진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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