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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울어야, 소리다-『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신의 예언은 방울이 울리고,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 비로소 말해진다. 소리의 그림자까지 사라져야 목소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크게 말하는 힘이 다 멈추고, 방울이 울리지 않는 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을 시라고 믿는다. 우리는 큰 소리에 내일을 당황하며 쉽게 자지러지지만, 어떤 이는 그 밑에 깔린 그림자 같은 소리를 듣고 전한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신의 말은 다 전해질 수 없다. 대신, 꿈을 보고 온 사람이 내일을 이야기 할 때가 있는데. 내일의 일을 오늘 알려주어도 오로지 내일이 되어야 아는 이들에게 소용없는 일이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말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내일의 기미를 살피는 걸음. 그 걸음은 우리와 다른 곳에 걸린다. 그렇다면 어떤 모양으로 있는가. '막 꽃피는 목련나무 속'을 들여다 본 이에게 마땅히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시집 뒤로 넘어가 제일 먼저 읽는다.
1. 꿈을 보는 사람, 아니라 그가 꿈인 사람.
「막 꽃피는 목련나무 속」, 전문
소리 없이 쏘아지는 총알은 없다. 그러나 그는 목련나무 속을 들여다 보며 알게 되었다. 겨울내 털옷으로 울퉁불퉁했던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봄이 되어도 움찔하지 않는 것이 궁금했겠다. 그것을 알게 되느라 그는 거의 목련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언제 튀어나갈지 모르는 꽃, 한 방의 장전이 언제 나오나 오래 들여다 보았다. 마침내 쏘아졌다. 꽃이 날아가 그의 몸을 뚫었다. 목련꽃이 피어서 노을이 졌다는 것이다. 제 피가 하늘에 걸려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셀 수 없이 죽었다가 살아났다. 이것이 신이 계절을 내치며 예언했던 시인의 삶이다. 흔들려 떠는 생이 소리를 멈추면 너는 그 그림자가 되어 약하게 울어라. 그는 꿈을 보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꿈이었다. 불쌍한 삶이다.
그래서 그의 소원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내 소원은 모든 죽음에/창문을 하나씩 달아주는 것,/공중에 무수히 떠가며/물방울 불이 휘네'(「내 소원은」, 전문) 그의 소원은 죽음 이후에 달려있다. 소멸해가는 것을 바라보며 모든 죽음에 창문을 하나씩 달고자 한다. 창문을 달아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닫혀진 죽음을 열어내는 것이겠다. 창 안을 보겠다는 의지다. 어떤 다발의 총알이 다시 그의 몸을 관통할지 모르는데, 용감한 소원이다. 시인의 소원이 아니라 신이 내린 명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2. 꿈을 하는 아들, 잠을 살피는 어미
꿈 자체인 사람을 바라보는 가족은 어떤 마음일까. 그의 어머니와,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매일 아들이 노을되는 줄 모르고 시골에서 올라와 빨래며 밥을 해주는 어머니가 계시다. 시인은 자신과 어머니의 생활을 나직히 말한다.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을 찾아/아들은 밤마다 눈을 뜨고,/잠결에 앓는 소리를 하며/어머니가 무릎을 만지고,'(「바닥에서 어머니가 주무신다」 부분)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일찍 내려가신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찍 바닥에서 일어난 어머니가
'무릎이 빈'어머니는 '모로 누운 서른셋 아들의 머리를' 들어 바로 뉘인다. 신과 그림자, 예언을 받아적는 꿈 자체인 사내도 어머니가 계서서 아들이 된다. 다 큰 아가가 되어 머리가 들린다. 당연하게도 요이며 이불을 깔아 자리를 봤을 것임에도, '바닥에서 어머니가 주무신다'고 말한다. '생활이 되지 않는 것을 찾'느라 아무리 깔아도 바닥이 딱딱했기 때문일까. 아들은 해가 중천에 가야 일어났다. 어머니는 계시지 않고, 편지만 놓여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은, 아니 시인은 두고두고 울기 위해서 시로 받아놓은 것이다. 이 편지를 옮기고 한 나절은 다시 울어야 했을 것이다. 받침이 빠지고 소리 나는 대로 쓰여진 모양이 어머니의 입모냥과 꼭 맞아서 소리로 울린다. '시' 아닌 어떤 매개를 대신 읽어도 아들 어미 할 것 없이 찔러온다. 꿈을 하는 아들과 그런 아들의 잠을 살피는 어미. 대체로 어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다. 그것 뿐이어서 슬프다.
3. 눈가에 떠 있는 사랑
「사랑」 전문
오리떼와, 오리떼를 보는 나와, 그녀의 눈 속에 떠 있는 나의 위치를 그으면 사랑이 그리는 '♡' 볼록함이 될 것 같다. 단번에 이어지는 직선을 보고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직선에는 시작과 끝 나와 너의 분간이 없기 때문이다. 구불하게 그리고 움푹 파인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이유는 나와 당신을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마음 좋은 동그라미가 되지 않는 까닭은 사랑은 결코 나와 너를 합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내 나와 너를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뒤뚱거리며 쫓아가는 못난 오리'가 되어 그녀의 눈 밖에 있어야 한다. 오리떼를 바라보며, 자신을 보았던 그녀의 눈이 되어 본다. 호를 긋고 깊숙히 들어갔다가 아찔하게 나와 다시 시작점과 마주하는 한 손 그리기. 이루었으나, 시작이 끝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끝난 사랑은 무엇에 울어야 하나. 시작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울어야 할 것 같다.
노을을 볼 때 하늘에 번지느라 뚫린 가슴을 생각한다. 등 뒤에서 가슴 안쪽으로 둥그렇게 뚫려 안이 비어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새떼가 날아간다. 그곳에 '냄새를 피'우며 방을 들이는 시인을 생각한다. 어디 시인 뿐일까. 생활이 없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와 눕는 바닥을 따뜻하게 구비할 이들도 그럴 것이고, 오리떼를 쫓다가 맨발로 들어온 이가 발을 말릴 곳도 그곳 일 것이다. 어디 시에서만 그럴 것일까. 시를 읽으며 오늘을 우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이에게도 비어서 꽉 찬 그곳이 필요하다. 공중을 그리는 이들은 현실에'술에 취해 눈을 감고 택시 등받이에 기대어 있'다. 그들은 택시 등받이에서도 '눈발이 등 속으로'(「봄밤」부분) 내려 등이 서늘하다. 등 차가운 이, 어떤 모양으로 있어야 할까. '자기야 저건 상처다 반쯤 뜬 자기의 눈이다' 초승달을 바라보며 하늘에 뜬 눈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치욕의 지느러미,/인광이다'(「초승달」부분)를 읽어낸다. 그래서 눈은 겉으로만 보지 않을 수 있다. 물속까지 피어있는 잎사귀를 바라볼 수 있게된다. 사그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거대한 소리에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울어야, 소리다.
「저곳」전문
박형준,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창작과비평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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