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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살아있을 준비가 되어있다 : <문학+병=병>
제목이 문제였다. 이렇게 수식으로 '맞춰 보시오'하며 문제 내는 작가는 없었다. 수식을 보자. 오른쪽 변에 있어야 할 문학은 어디로 간 것이며 문학은 병과 더하면 사라지는 이름인 것인가? 아니면 혹시 문학은 0과 치환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수식의 참과 거짓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은 이것을 읽는 독자일 뿐일 것이다. 볼라뇨, 그가 낸 문제에 골몰해 보기로 했다. 어떤 계산도 필요 없이 그저 종횡무진한 입담을 따라갈 뿐이다.
이야기는 볼라뇨가 병원에서 진찰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프랑스 문학이야기로 넘어가는데, 프랑스 문학의 시인들에 대해 읊더니 말라르메를 꼽는다. 말라르메 시를 같이 읽자고 하더니 보들레르로 넘어간다. 다시 좋지 않은 자신의 병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카프카를 불러서 끝나는 식이다. 순식간에 읽을 수 있으나 어리둥절하다. 말이 끊어지는 곳이 적고 위아래가 모두 한 입으로 엮어 있기 때문에 발췌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원서의 어조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 통통 튀는 입담이 병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임에도 유쾌했다.
거세된 인간이 욕망하는 단 한가지, 그건 섹스죠. p.133
이 작품에서는 섹스가 활기차게(?)쓰인다. 그 행위를 쓴 것 아니고, 그저 명사로써 섹스가 자주 나오는 것뿐인데 그것은 아주 쉽고, 늘 해야 하고, 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즐거운 것처럼 여겨진다. 섹스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열정? 삶 자체? 여러 가지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경쾌하고 발랄한 이름, 이것을 자꾸 부르는 것만으로도 금기를 깨는 일이 될 것같다. 그런데 이 '섹스'를 볼라뇨는 난처하게도 '책'과 같은 것이라 말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책도 섹스도 유한합니다. 하지만 독서와 섹스에 대한 욕망은 무한하여 우리의 죽음과 두려움과 평화에 대한 열망조차 추월합니다. 그가 말하듯, 독서에 대한 열망도 섹스에 대한 욕망도 없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이 훌륭한 시에서 말라르메에게 남은 건 뭘까요? 그건 바로 여행이고 여행에 대한 열망입니다. p.139
그는 말라르메의 시를 읽으며 말한다. 우리에게 독서에 대한 열망도, 섹스에 대한 욕망도 남지 않을 때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되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은 좋은 것인가? 열망과 욕구가 남지 않은 권태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할 수 있는 것일까?
여행은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p.140
그러나 볼라뇨의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다. 독자는 (화가 나서)되물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여행을 하자고 하는 것인가(이 사람이)?" 그는 예상했다는 듯 이어서 말한다.
사실 여행하지 않는 편이 건강에 좋으며 움직이지 않는 편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편이, 겨울에는 따듯하게 입고 있다가 여름이 오면 목도리만 풀어 두는 게 건강에 이롭습니다. 입을 열지도, 눈을 깜빡이지도, 숨을 쉬지도 않는 게 건강에 이롭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숨을 쉬고 여행을 하고 있죠. p.141
한 마디로 줄이면 "병들지 않으려면 죽어버려라!"일까. 여행을 하지 않으면 일단 안전하고, 돈을 쓸 일도 없고, 고생을 할 이유도 없다. 여행이 무엇을 가져다 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 모든 것을 감수 할때 일어나는 일이다. 극단적인 사람. 여행하지 않고 숨은 쉬면서 안전하게 자기 생활 안에서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 볼라뇨는 왜 병을 감수하면서 여행을 하라고 하는 것일까?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 근대인의 병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명확한 진단이 있을까요. 그 권태를 벗어나는 데, 그 죽음의 상태를 탈출하는 데 우리 손에 주어진 유일한 것, 그렇다고 그다지 우리가 손에 쥐고 있지도 않은 그것은 바로 공포입니다.
다시 말해, 악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좀비처럼, 밀가루 빵으로 연명하는 노예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노예를 만드는 사람으로, 악한으로, 아내와 세 자식을 살해한 후 뻘뻘 땀을 흘리며 미처 알지 못한 뭔가를 지닌 것처럼 스스로를 낯설어하면서도 자유를 느끼고 그 희생자들이 죽을 만했다고 말해 놓고, 몇 시간이 지나 정신이 들면 누구도 그런 잔인한 죽음을 맞아서는 안 되며 자기가 미쳤었나 보다면서 경찰에게 자기를 내버려 두라고 요구하는 인간처럼 살고 있습니다. p.146
좀비처럼 산다는 말, 노예처럼 산다는 말도 모자라 노예를 만드는 사람으로 산다는 말이 이어진다. 연거푸 충격, 아니야, 나는 나 답게 살고 있어! 라고 말하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다 그것이 정말 내가 '생각'해서 나를 사는 것일까? 볼라뇨는 묻는다. 볼라뇨는 과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말하고 싶다. 그것은 여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사람을 병들게 하는 여행을 통해서 제발 '병 들어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이미, 우리의 행위와 언어 또한 병들어 있으니, 그것을 모르고 살지 말고, 제발 떠나라. 두려워 하지 말라 이어 말한다.
말라르메는 여행과 여행자의 운명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이지튀르』의 저자는 우리의 행위만 병든게 아니라 언어 또한 병들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치료를 위해 해독제나 약을 찾을 때, 새로운 것, 오직 미지의 곳에서 발견 되는 그것을 찾으려면 섹스와 책과 여행을 탐험해야 합니다. 비록 이것들이 우리를 심연으로 이끌지라도 말입니다. 어쩌면 그 심연이 해독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릅니다. p.163
'병들어 있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낫게 하는 것은 심연으로 이끄는 섹스와 책과 여행의 탐험이라며 외치고 소설을 빠져나가려 한다.
글쓰기와 떨어질 수 없다는 말로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는 카프카가 여행과 섹스, 책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이며, 그럼에도 뭔가를 찾아서 그 길에 들어서고 길을 잃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152
나는 제목으로 돌아가 <문학+병=병> 기우뚱한 수식의 참과 거짓을 따지기 위해 읽었던 것을 다시 생각한다.
지나왔던 날을 들춰본다. 이것이 온전하지 않은 것이었다면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있는 세계는 과연온전한가? 오아시스는 어디인가. 썩은 물이 계속 나오는 오아시스를 삶의 원천으로 여겨 빌붙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행의 시작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병들 수 있다. 이것을 알고 난 후에 시작된 독서와 섹스는 무엇을 가져다줄까. 그것이 혹 겨우 찾아온 괜찮은 여행지를 의심에 빠뜨린다 하더라도, 그때에는 병을 감수하고 떠날 수 있는 배짱이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찾지 못하거나, 찾을 수 있어도. 그러니 언제든지 병들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든지 살아있을 준비가 되어 있다.
볼라뇨가 말한다. "문제가 그럴 듯 했나?"
+볼라뇨는 실제로 간부전을 앓고 있었고 그로 인해 죽었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볼라뇨의 세 번 째 단편집이자 첫 번째 유작이다. 이 흥미진진한 작가가 일으킨 돌풍을 <볼라뇨 전염병>이라고 부른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발견 될 것 같다. '볼라뇨' 라니, 정말로 병 이름 같잖아!
+열린책들 표지는 언제나 멋졌지만, 이 표지는 그중에서도 최고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의 한 장면을 이토록 몽환적으로 그려놓았다.
표지그림 야후벨. 열린책들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한국어판 컬렉션 표지를 그렸다.
+ 사진 출처 : 알라딘
작성 : 2013/12/0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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