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쑥대머리' 노래에 있는 감정은 춘향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120개가 넘는 판본으로 시대의 얼굴이 부르는 노래. 정숙을 요구받고 충실히 이행한 기생 춘향은 쑥대머리가 되어 옥에 갇힌다. 차디찬 감방에서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토하며 무덤근처 선나무가 '상사목'이 될거라며 분노하는 이는 이제 겨우 16살이 된 여자(아이)다. 이 가사에 깔린 '사랑'에 몹시 놀란다. 열여섯 살은 어떤 나이인가. 한창 근의 공식을 배울 때는 아닌가. "니들은 근의 공식만 알지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몰라." 정정하자. 근의 공식도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이리 가까이 오너라...안거라, 보자. 서거라, 보자. 쌍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장아장 거닐어서 백만교태 다 부려라." 이몽룡과 첫날..
우리의 피로는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고, 숲 이면에는 이제는 보일일 없는 오래된 제사가 있다. 사람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선정릉은 특별한 날 외에는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 죽은 자의 집이다. 신도와 어도가 명령하는 산 이와 죽은 이의 길 다름은, 막연하지만 앞으로의 ‘나’와 두운이 가진 삶-차를 보여준다. 그러나 프랑스어과를 나와 에펠탑이나 빵이나, 파리 8대학 같은 것을 생각했떤 예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어떤가. 이것은 두운과 ‘나’ 못지않게 넘을 수 없는 낙차다. 정확하고 묵직한 훅을 날리는 두운, 나무의 이름을 정확하게 읊는 두운, 생각이 있긴 있는 것일까? 묻고 싶은 두운. 열거한 범상치 않은 모습은 두운이 스스로 자각할수 없는 그의 가능성인데, 이것은 ‘내..
'그 책'은 4~5페이지마다 접혀 아래쪽이 뚱뚱했다. 잘 말린 식물처럼 아래가 벌어졌다. 그녀는 그 책을 매번 읽을 것도 아니면서 늘 가방에 챙겼다. 때문에 표지에는 이런저런 상처가 생겼고, 그녀는 일과처럼 자신의 일이 끝나고 나서야 그 책을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하루종일 가방에서 고통스러웠을 그 책. 차르르, 아코디언처럼 벌어졌다. "누나는 참 책을 소중히 다루네요." 언젠가 무슨 책, 500페이지가 넘는 양장책을 빌려주며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다른이에게 책을 빌려주기 전에 종이로 책을 포장했던 건 그 책을 아껴서가 아니라 빌려간 사람이 '은연중'을 만들며 생기는 표지의 흔적 때문이라는 게 생각났다. 의도하지 않은 상처, 시간을 함께 빌려주는 것,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자연 수렴. 그러나 무엇보다..
불필요한 계산을 하면 나는 인생의 어떤 때에 500여 시간을 일본 드라마를 보는데 썼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일드를 보았던 500여 시간은 정확하게 인생의 변곡점, 바닥을 칠 무렵과 겹친다. 본격적으로 시청했던 것은 직장에 처음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취미’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싶어 ‘일본’이라든지 ‘작품성’이라는 수식을 데려왔지만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어떤 수식을 부여해도 '일'에 가려지는 '나'로서 겪는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저녁마다 보았던 일드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서 개인이 입는 피로를 깊은 생각 없이 날려 주는 드링크였다. 언제적의 3S인가. 장려하지 않아도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감정'을 쉽게, 효과적으로 누그릴 줄 알았으니. 요새는 외국의 것을 데려와 보는 수고도 없다. 최근에는 을 ..
우리가 우연한 만남을 ‘관계’로 키우는 장면에는, 잘 보이지 않는 어떤 순간이 들어있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우연’에 그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감동스러운 장면이지만, 이 순간은 벼락처럼 오기 때문에 보기 어렵다. 흔하게는 내가 이렇게 걷고, 먹고, 사람과 만나고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사건’까지 필요하다. 겐타로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사고를 당한다. 사고야 가벼웠지만 당장에 자전거를 타고 가지 못하게 되었다. 늘 가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고, 걸었기 때문에 상자에 담긴 강아지를 발견하게 된다. '잘 키워달라'는 쪽지를 알 도리가 없는, 아주 작은 강아지였다. 책은 이 작은 강아지의 귀여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뛰었다거나 잘 잤다거나 먹는다는 이야기..
"가끔씩 이야기는 무너지고," * 목차는 반원으로 배치돼 있다. 활대 보이지 않는 시위가 팽팽하고. 작가의 손은 목차의 중간을 당겼겠다. 그래서 가장 가운데 솟아난 '매듭'부분을 읽어야 하겠지만, 첫 번째 실린 '살구'로 이미 마음이 어지럽다. 여기까지 쓰니, '매듭'을 중심으로 목차가 대구를 이루고 이루는 게 보인다. 시작은 '살구'고, 끝 역시 '살구'다. 솔닛은 '당신의 이야기'에 대해서 묻다가 "종종 이야기가 당신의 무릎 앞에 떨어진다."며 잠깐 상념에 잠기게 한다. 그런 적이 있던가, 있지, 기지, 그렇지 싶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100파운드의 살구 더미가 도착한 적 있다며 너스레다. 무슨 얘긴가 살펴보니 그것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살구였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살구는 무척 달..
...대다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세계관의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변화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아주 드물게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의 출현이 바로 그런 변화에 해당된다. * 저녁나절 몸을 약간 기대는 것만으로도 일주일간의 실패와 기적을 확인할 수 있다. 620회차 당첨은 24번을 선택하고 그 옆의 25번을 찍는 어떤 용기. 이어서 33번을 찍고 34번을 또 찍어야 하는 엄혹을 견딘 15명에게 돌아갔다. 1등 당첨자가 가지게 될 11억의 돈보다 더 가늠하기 어려운 15명의 기쁨을 상상한다. 이건 이들만 알 수 있는 것이겠다. 숫자 두개를 맞춘 종이를 옆으로 치우면 다크하기 짝이 없는 경제 뉴스가 가득한데. 이것은 이제 모두가 아는 것이다. 국가 채무는 600조원을 돌파(돌파라니, 목표였던 것인가)했고 가..
귀애하는 것을 거리두는 일에 대해 무엇이 되기 전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음가'로 수 놓는 시가 있다. 때문에 의미가 나중에야 오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사방에서 보고 되뇌인 후에야 쓰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끼는 것을 대할 때 간신히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안감힘이 있는지. 다행히 둘 수 있는 그 짧은 곳을 '거리'라고 하자. '거리' 두고 싶은 시. 이 의미를 안다는 듯 저자는 초엽에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를 놓았다. 햇빛을 길게 읽는다. 그것이 어딘가를 통과하는 '긴 장소'는 어떤 것일까.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불투명한 분홍 창이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중략)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분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
영성, 스피리추얼리티라니. 푸코는 어떻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푸코의 명석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우리의 이로에서 보면 푸코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706p 이것은 부분 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말을 수시로 털어낸다. 라캉, 르장드르, 푸코를 이야기 하는 이 책은 과연 한 권인가. 이 뒤로 얼마나 많은 책이 그림자로 겹겹인가. 그러나 그 그림자가 얼마나 두껍간건에, 또한 이 세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대도 이 책은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읽어볼만 하다고 추천한다. 일본의 혈기 왕성한 철학자가 '나를 따르라, 저 어둔 개념속으로 같이 가자' 는 투의 비장하지만 즐거운 말투로 논의를 진행한다. 문장은 꽤나 문학적이..
리쿠의 탄생 예컨대 내가 당신을 ‘상희야’라고 부를 때, 그리고 상희인 당신이 상희가 되어 ‘응’하고 대답할 때. 상희라는 이름과 당신인 상희가 동일해 지는 시간은, 타인인 내가 당신을 부를 때뿐이다. 혼자 있는 '우리'들은 스스로 타인이 되어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지 않는다. 더해서 이름은 '나'를 주변에 알리는 이미지나 혹은 소리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름의 주인인 나의 내면에서는 쉽게 생략된다. 모든 이름은 스스로가 아니라 나를 비롯하게 최초의 타자에 의해 지어진다는 점 또한 생각해야겠다. 때문에 책 전면으로 그려진 인물과 인물의 이름에도 이것은 '리쿠'라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리쿠'라고 부르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다시 말해 '아이사와 리쿠'를 존재하게 한 아주 가까운 주변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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