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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연한 만남을 관계로 키우는 장면에는잘 보이지 않는 어떤 순간이 들어있다.

 

나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우연에 그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감동스러운 장면이지만이 순간은 벼락처럼 오기 때문에 보기 어렵다흔하게는 내가 이렇게 걷고먹고사람과 만나고 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사건까지 필요하다겐타로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 사고를 당한다사고야 가벼웠지만 당장에 자전거를 타고 가지 못하게 되었다늘 가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걸어야 했고걸었기 때문에 상자에 담긴 강아지를 발견하게 된다. '잘 키워달라'는 쪽지를 알 도리가 없는아주 작은 강아지였다.

 

책은 이 작은 강아지의 귀여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그저 뛰었다거나 잘 잤다거나 먹는다는 이야기 뿐이 강아지의 이름은 '원더'. <원더독>은 그가 구심인 것 같지만 천만에원더는 중요하지 않다그러므로 나의 유년에도 원더같은 개가 있었더라면,‘ 마음으로 책을 든다면 접는 것이 좋다이유는 원더가 특별한 개가 아니라, ’특별한 만남이 있는 개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세상 어디에 특별한 만남이 있던가모든 것은 우연이다그중에 특히 기억하는 만남이 있을 뿐그러므로 알아채고 싶지 않겠지만우리는 이미 원더 같은 강아지를 수백 번이나 만났었다원더는 고등학생인 겐타로가 안고 오고 싶을 정도로 작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한 것이었다이런 설명은 어떨까. ‘원더는 어떤 마음을 먹지 않아도어떤 길에 굳이 들지 않아도 마주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라는 설명이.

 

문제는 그 사회적 약자를 '우연'히 만나서 '관계할 수 있겠냐는 점이다겐타로는 생각했을 것이다이 강아지는 누군가가 다시 발견할 때까지 그 앞날을 가늠할 수 없다이것이 본다는 것의 뜻이다자신이 어쩌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일단은 그대로 두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판단을 더한다학교에 가고 있고학교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겐타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움에서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이 있는 '사회'의 도움을 예상했던 것 같다오해가 쉽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는 나태한 낙관이 아니다그런 마음으로도 정말 '어떻게'는 될 수 있겠다는 나를 둘러싼 '사회적 안전망'을 암시한다.


<원더독>은 그러나 개인이 어떤 우연을 받아들여 관계로 만들어 가는 흔한 미담에서 끝나지 않는다한 발 더 나아가내가 있는 사회를 설득시켜 이 우연을 하나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다학생이 교칙을 만들고투표를 한다한 개의 고등학교가 한 마리의 개를 기르기 위해 의견을 수립하는 과정을 그린다이뿐인가내가 있는 사회(고등학교)와 나를 둘러싼 더 크고 다른 사회(고등학교 선생님)와의 갈등도 있다당연한 이유로 개 키우는 것을 반대하는 교무실은 마냥 반감으로 학생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학생들의 성장과원더의 실제적인 성장을 위해 대립하며 대화한다여기에 반더포겔부라는 희한안 이름의 동아리는원더를 같이 기르면서 이런 말로 겐타로를아니 독자를 감동시킨다.

 

피셔맨스 노트라는 거야.” “절벽에서 자일이 풀리면 저승행이잖아쉽게 풀리지 않는 매듭법이 여러 가지 있어.” 41


이는 매듭이 아니라 연대를 설명하는 문장아닌가쉽게 풀리지 않는 매듭법을 가르쳐주는 동아리 선배의 말에서 신입생과의 연대가 끈끈하게 시작된다절벽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자일로 묶는 사람들의 손그것은 삶을 기록으로 매기는 험난한 과정이 아니라 기록 따위 별거 아니야천천히 간다고 산이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89 그저 함께도망갈 리 없는 산을 오르는 것 뿐이라는 점을 잔잔하게 알려준다이 산을 어떻게 함께 오르느냐의 문제를 진정 고민하게 하는 지점에 '원더'가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원더'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wander’는 방랑하다’ 혹은 헤매다라는 뜻이고 ‘wonder’는 놀라움이나 신기해하다’ 같은 뜻이 되는 모양이다단어 두 개를 비교하면서 겐타로는 그렇구나.”하고 중얼거렸다. 39


원더는 온통 wander만 있는 듯한 세상에서나 역시 방랑하거나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그런 이유로 정말 '원더'를 보지 못하고 누군가와의 매듭 없이 산을 힘겹게 오르는 것은 아닐까아니나는 아직 젊고몸이 성해 그런대로 올라갈 수 있으나저기 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야 하는 이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닌가아니이런 감상에 그치지 않고 <원더독>은 고등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그들의 연대를 꾸렸는지, 이 막연한 한숨에  10년치의 시간을 꼼꼼히 펼처 보여준다그러므로 학생들에게 '원더'같은 강아지가 있기를 바라기보다 학생들의 문고에 이 책을 놓아주는 것이 더 실천적일 것이다언젠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원더독>을 읽을 것을 떠올리며나는 아주 간신히 오랜만에 발음해 본다. '미래', '희망'같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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