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쿠의 탄생 예컨대 내가 당신을 ‘상희야’라고 부를 때, 그리고 상희인 당신이 상희가 되어 ‘응’하고 대답할 때. 상희라는 이름과 당신인 상희가 동일해 지는 시간은, 타인인 내가 당신을 부를 때뿐이다. 혼자 있는 '우리'들은 스스로 타인이 되어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지 않는다. 더해서 이름은 '나'를 주변에 알리는 이미지나 혹은 소리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름의 주인인 나의 내면에서는 쉽게 생략된다. 모든 이름은 스스로가 아니라 나를 비롯하게 최초의 타자에 의해 지어진다는 점 또한 생각해야겠다. 때문에 책 전면으로 그려진 인물과 인물의 이름에도 이것은 '리쿠'라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리쿠'라고 부르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다시 말해 '아이사와 리쿠'를 존재하게 한 아주 가까운 주변의 이..
고조라는 곳. 나라에서도 두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 이제는 노인들뿐이고, 젊은이들은 거의 없어 노인의 부양도 노인이 하는 곳. 서울이나 도쿄처럼 한시도 조용할 일이 없는 도시가 있는가하면 떠나는 사람들로 잠잠히 말을 잃어가는 마을도 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을 아주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가만 보고 있으면 이것은 단순히 고조-마을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고조로부터 예견되는 건 '당신에게 잊혀진 어떤 것'이다. 영화는 흑백의 1부와 2부의 컬러으로 구분된다. 1부는 영화를 찍기 위한 스케치 여정을 거의 그대로 담는다. 실제 이 영화 감독의 고민과 작업을 보여준다. 작업차 마을을 살피고, 마을 사람을 만나는 동선이다. 실제 마을 사람들..
어렵게 아웃된 공을 주워 왔으나 스로 인은 운동 잘하는 놈이 던지고 혼자 박수치며 아무도 보지 않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운동장을 달려나가는 마에다. 중에서 우리 존재 화이팅 희지는 누구인가. ‘미지’라고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그냥 시인의 오류로 태어난 이다. 희지는 저녁이 오면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 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 「희지의 세계」 부분. 이 싱거운 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희지가 목장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그는 ①미주를 ‘부르고’ ②미주는 양들을 이끄는데 이때 희지는 미주와 닿지 않는다. 그를 끌거나 손잡지 않는다. 이들 사이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소리’다. 소리는 형체 없이 존재했다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영혼을 닮았다. 영혼은 나중에 온다. 진흙에 숨을 불어넣어..
몇 권이 더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1회 수상작품집 밖에 남아 있지 않다. 5회에 이르는 동안 두어권은 더 있었지 싶은데 보이지 않는다. 여간해서 책을 치우지 않는 나로서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나마 1회 수상작품집이 있는 이유는 다른 것 없이 그것이 '1회 수상작품집'이기 때문이다. 2회나 3회였다면 역시 수중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6회 수상작품집을 샀는데. 태반은 정지돈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 것 같다. 덧붙이자면 정지돈의 작품이 대상을 받은 것에 대한 궁금증이다. 예전에 이라는 이상한 작품을 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걸 쓴건 아니겠지.' 라는 불안, 밀려오는 의심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제 오늘 다 읽었고. 변변찮은 감상을 붙이자면 이 작품이 대상인 것..
조명이 나가고 이야기를 건네받을까요. 제가 기억하는 유년에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터울 많은 동네형으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형이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책이 좀 생기기 시작했어요. 고사성어 책이었습니다. 저학년때의 일일겁니다. 다행스럽게도 만화로 짜여진 고사성어 읽기로, 재밌었습니다. 비유하기에도 좀 낡은 말이지만 정말 너덜너덜거릴 때까지 읽었습니다. 흑백의 만화는 고사성어 수백개의 뜻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형과 나는 터울이 많이 나 나눈 말은 거의 없습니다만 앞집과 옆집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점촌에서, 유일하게 서로의 앞집이 되주었던 이웃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처음 배운 성어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 멍청하다 했지요. 왜 하필 농부일까. 그런 생각도 좀 했습니다. 토끼가 어느 그루..
1. 어두운 갈색에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린다 이 색은 마을 입구에서 비를 맞는 장승의 부라린 눈이고, 색색의 줄을 가지마다 걸친 성황당 나무의 단단함이다. 연기가 올라오는 지붕, 낮은 기둥을 이루는 손 때이며 다른 소문이 침범할 수 없는 방 입구의 붉은 글씨다. 지금은 사라진 마을, 그곳에 살았던 이들을 단단히 결속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시작은 달이다. 달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고 믿는 것일까. 누구나 달이 있다고 하늘을 가리켜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을 끌어내 '여기 달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달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아닐까 싶다. 달이 있다고 증명해야 하는 것은 과학의 일이 아닌가 하며 어물쩍 물러선다. 그러나 시인은 이지러지는 유약에 묻는다. 수천 ..
손가락을 펼치면 여러 개의 사 이 가 생 긴 다 손가락 사이로는 무엇도 잡을 수 없으므로, 손가락은 자신을 지나가는 모두를 잡지 않아도 되었다. 손가락은 좀 자유로워졌고, 조금 외로워졌다. 당신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한 손에 다 있다.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손과 발에는 오리의 발처럼 갈퀴가 있었다고 한다. 후에 갈퀴 부분이 사라지면서 사이가 있는 손가락의 형태를 이룬다고 한다. 지금의 '나'를 이루기 위해 세포의 ‘예정된’ 죽음이 있었다. '아포토시스'. 해서 누구나, 죽음으로써 탄생하는 생을 산다. 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따뜻한 손인 줄 알았는데, 사라진 자리가 삶을 지탱하고 있다. '사탕'은 달콤하고 황홀한 말, 완벽(죽음)에 이르고 싶은 산 사람의 목표이고. '차가운 사탕'은 그 말들을 그만..
,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없는 다섯 살의 마음이 있다. '무모하다'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이 말은 앞 뒤를 헤아려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으로. 시간의 층위를 어지럽힐 때 쓰인다. 가령 어른들에게 '아이의 눈으로 보세요'라고 조언하는 것이 그렇다. 이 조심스러운 청유에 아이의 눈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어떤 어른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을 하지 못한다. 간신히 키를 낮춰 아이의 시야를 엿볼 수 있을 뿐. 그게 가능했다면 오래전 어린왕자가 우주를 떠돌 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을 한 명은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고전에서 어른들이 증명하듯이, 어른은 자신만의 눈을 갖고 보기에도 벅찬 사람들이라 자신이 지나온 것을 망각하고 앞으로 밟게 될 시간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
하재연,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문학과 지성사, 2012.1 '선'이 '면' 되는 마음을 기억하려고 한다. 면을 돕는 선. 점을 지나온 선. 이러한 선을 나는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가장자리는 모든 존재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가장자리'가 있다. 곤란한 당신은 이 순간 내게 공기나 우주를 말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좀 땀이 나겠지. 어설픈 최선을 다하면 이렇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름을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지 않을까.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지점이. 그때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지나는 순간 더 이상 공기라고 부를 수 없고 우주라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의 '가장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아직 '나'..
, 이성복,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문학동네. 영화,『도희야』 원장면들어느 날 당신은 벌겋게 익은 수박 속을 숟가락으로 파먹다가 갑자기 그 수박을 길러낸 식물(그걸 수박풀이라 해야 되나, 수박나무라 해야 되나), 그저 잔가시가 촘촘히 붙은 뻣센 너울과 호박잎을 닮은 잎 새 몇 장으로 땅바닥을 기는 그 식물이 불쌍하게 생각된 적은 없는지. 여름날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땅속 깊이 주둥이를 박고 벌컥벌컥 물을 길어올려 벌건 과즙으로 됫박만한 수박통을 가득 채운 끈기와 정성은 대체 어디서 전수받았으며,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단지 쥐똥만한 제 씨알들을 멀리 날라줄지도 모를 낯선 것들에 대한 대접으로는 도에 지나친, 그 멍청한 희생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 250p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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