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은 척추동물의 기관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척추동물인 사람의 눈을 가리켜 '눈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른 척추동물을 살펴보자. 개,소,말,고양이 등등 다르지 않다. '눈알'이라고 하지 않는다. '고양이 눈', 이라고 하지 '고양이 눈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때로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요리를 보고 '조기 눈알'이나 '동태 눈알'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것은 생선을 자주 만나지만 우리의 삶이 생선과 가까운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생선과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또는 아주 작은 것을 이르는 말로 '모기 눈알'이라고 '눈알'을 쓰는 것 같다.(엄밀히 말해 모기의 눈은 '눈알'이라고 할 수 없다)그러나 우리는 생선처럼 역시 모기와도 멀다. 몸으로는 아주 가깝지..
증명이 필요한 행복 - 황정은, [상류엔 맹금류]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해왔다.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주인공 '나'는 남자 A와 B를 만난다. 나는 A와 더 잘 맞고 어울리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그의 가족도 만나고, 자주 만나게 된다. A의 가족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서로 아낄 줄 안다. A의 가족은 나와 A의 결혼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B와 결혼했다. 어째서일까. 라는 이야기는 양귀자의 에서 볼 수 있었다. 은 나 '안진진'의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엄마의 삶과와 대조되는 쌍둥이 이모의 생활, 그녀의 가족 이야기까지 담는다. 이곳에서 안진진의 연애사는 소설의 몇가지 주제 중 하나다. 이것을 확대하자. 조금더 시니컬하고 건조한..
[ ]의 가능성 -『네모』, 이준규 허무맹랑하게도네모는 시의 모습이다. 시는 오랫동안 네모였으나 아무도 네모라고 부르지 않았다. 시집은 네모나고, 그 안에 사는 시도 네모를 갖춘다. 시는 둥글게 모일 수도 있었으나, 차분한 각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시는 엄밀히 말하자면 네모는 아니다. 꼭 한 칸을 들여쓰기 때문에 큰 네모에, 작은 네모가 빠져 있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뤄져 있다는 세계를 살지만 그곳에는 꼭 나 하나 만큼의 허전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허전함은 어떤 우주에서도 찾아 가득해 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시인은 늘 한 칸을 띄우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만들어 진 시는 큰 네모와, 그것을 이루기도 전에 사라진 작은 네모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허무맹랑하다고 해도..
토마스 에스페달/손화숙 옮김/열린책들 사랑이 있던 자리-자연을 거슬러 축하는 불꽃놀이처럼 순간을 반짝인다. 결혼과 출산, 입학과 졸업, 입사와 퇴사. 우리는 꽃다발을 안기며 기뻐하지만 이때의 행복은 사진과 함께 고정 할 수 없다. 어쩌면 축하는 이제 그것이 기쁨을 제외한 무엇으로 변할테니 단단해 지라는 당부일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축제는 절정을 기뻐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절정과 잘 헤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지. 순식간에 하늘을 채웠다가 바닥으로 하수도로 빠지는 꽃잎들, 겨울에도 벚꽃을 볼 수 있다면 봄날 도로가 막히고 나무밑으로 북적하게 모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잘 헤어지기 위한 성대한 만남. 사족처럼, '변하기 쉬운 것'이란 목록 아래 '사랑'을 조그맣게 쓴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
솔로몬 노섭/오숙은/열린책들 우리는 감지 할 수 없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비근하게 숨을 쉬는 일에 온 힘 들이지 않는 것이 그렇고, 신용카드 정보 누출 같은 일에 화를 오래 내지 않은 것이 그렇다.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대상에게 감정을 오래 투사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감각해지는 것은 벌어진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상관 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 같다. 그래서 자연에게 엄청난 은혜를 받고 있어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신용카드 3사로부터 -모든 개인정보가 털린- '막대한 침해'를 겪었음에도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노예 플랫은 12년 동안 맞았던 채찍의 횟수를 다 기억할 수 없다. 12년 동안 맞았던 채찍으로 '주인'..
배수아/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아야미, 나는 잠에 몰려 하루를 적어. 별것도 아닌 일 몇 개와 도저히 적지 않을 수 없는 일 몇 개를 불성실하게 써. 통째로 옮겨 놓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닥에 배를 깔고 턱을 괴는 것은 필수야. 일기를 적는 몇 가지 원칙. 1. 간신히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만, 2. 가장 중요한 내용은 덜어내고. 진심이 촌스럽게 잘려. 사방에 흩어져. 몇 개는 그 날의 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아. 버린 마음들은, 현실에서 질식하는 진심은 살아남으려고 몸을 틀어. 아야미, 나는 잠에서 일어나면 꿈을 적어. 꿈이 오래지 않아, 없었던 일처럼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다, 는 허무.를 허무려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띄엄띄엄 적어가. 정성스럽게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 날도 있..
유형진/피터 판과 친구들/기린과숲 피터 판과 친구들 '피터 판'에서 두 가지*를 떠올린다. 그것은 '피터 팬'의 심심한 변용일 수도 있고, 피터라는 이름의 판Pan이라는 가능성일 수 있겠다는 것. 피터 팬은 그 유명한 동화 속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요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판Pan은 목신, 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키고 춤과 음악을 좋아하며 명랑한 성격을 가졌다는 반인반수다. 첫 장을 넘기고 피터 판이 '피터 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의 친구들이 그다지 매력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후문이다.) 피터 팬의 친구라면 팅커벨이라든가, 혹은 팅커벨이 아닐까. 그러나 피터 판의 꿈과 모험을 제일 먼저 맞는 이, 이었다. 그래서 피터 판은 판Pan에서 왔을 가능성..
사라지는 시간 모르게-김언, 『한 시간씩 거리가 좁혀진다』,기린과숲.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하게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세계. 내가 아무리 들어가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킨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죽어있기 때문이다. 189쪽의 24번째 줄은 천 년후에 펼쳐도 189쪽 24번째 줄이다. 책은 형태를 갖추면서 움직이기를 거부한다. 움직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다. 아무리 읽어도 변하지 않는다. 변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 음흉한 미소. 경주를 하기로 했는데, 달리지 않는다. 영원히. 전자책을 처음 읽는다. 행간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 경악, 금치 못했다. 움직이는 글자로 어지러웠다. 글자 크기에 따라 밑으로 떨어지는 글자의 수가 다르다. ..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열린책들/2009 미봉책-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그는 말수가 적었다.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투명한 눈망울이나 의미 없는 고개짓, 그늘진 등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일이 어리석다고도 했다. 그래서 말이 많은 곳에서는 그를 찾기 어려웠다. 시끄러운 곳에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은 대개 없어진 무엇을 찾느라 분주했다. 없어진 것에 대한 관심이 끊길 때 비로소 그는 옷깃을 털며 오후를 걸었다. -진실이 산책하는 법 진실이란 말수가 없어서 거짓말 할 가능성조차 없는 것이다. 구로프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안나 세르게예브나의 사랑이 진실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은 거짓말 할 가능성을 만들지 않는다. 둘만의 만남, 둘만의 시간, 둘만이 기억하..
오쿠다 히데오/침묵의 거리에서/민음사 : 허락과 무관하게-침묵의 거리에서 1제곱은 선이고 2제곱은 사각형, 3제곱은 입방체를 의미한다. 이보다 더 큰 지수를 도형으로 시각화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자연은 그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 지롤라모 카르다노가 지수에 관하여 남긴 말* 그러나 허락되었건 금지되었건 간에, 4 제곱(제곱의 제곱)과 6 제곱(세제곱의 제곱)은 존재가 인정되었다. 카르다노 역시 5차, 7차 등의 거듭제곱을 다루면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고차원 거듭제곱이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기하학적인 해설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과 사각형, 입방체로 대응되는 3제곱 이상의 것은 머리에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고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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