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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너의 꿈 속에서

_봄밤 2017. 9. 6. 23:16


샤워를 하고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들어오자 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노트북은 어두운 주위를 뚫고 흰색 빛을 내고 있었고,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척척한 수건을 내리고 홀린 듯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곧 단두대가 떨어지고 노래를 부르던 남자가 죽었다. 한 노래가 끝났다. 씻기 전에 나는 <비밀의 숲>ost를 듣고 있었다. 돌아오니 어째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아름다운 넘버가 나오고 있다. 아마 조승우에서 시작되었을 어떤 사달이었을텐데, 어떻게 닿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귀를 의심했고, 눈을 의심했고, 유투브가 다음 노래를 들려주는 것을 마냥 보았다. 그러자 다음에는 이걸 보여주었다. 





잠이 다 깼다. 나는 예수님이 이렇게 화를 내면서 '내가 왜 죽나요'라고 하나님께 말했으리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노래를 들었다면 하나님이 뭐라고 분명히 대답했을 것이다. 라고 믿는 내 심정이었다. 마이클리는 지저스였다. 인간이 부를 수 있는 영역의 음가와 분노가 아니었다. 마이클리는 핏대로도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고 손바닥으로도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고, 흉곽으로도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가 떠나지 않아 그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류정환, 최정원, 조승우, 홍광호 정도만 알고 있던 뮤지컬 배우를 며칠 새 몇 명이나 더 알게 되었고, 그들의 필모를 찾아 보았고, 인터뷰를 읽었고, 그중에 특히 귀에 들어왔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데스노트>는 언제 다시 막에 오를 수 있을 '모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 뿐인가. 바로 얼마전에, 그러니까 어제, 주말에, 뮤지컬 페스티벌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또 어떻게 되었느냐. 나는 <시라노>와 <레베카>를 예매했다. 시라노에는 홍광호가 나오는 것으로, 레베카는 옥주현과 엄기준이 나오는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며칠 뒤, 마이클리와 한지상이 출연하는 <나폴레옹>이 현재 공연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너의 꿈 속에서>는 앙리가 빅터를 대신해 죽기 전에 부르는 노래다. 빅터에게 불러주는 노래이자 죽기 전 자신에게 바치는 마지막 호흡. 


앙리를 연기하는 이들만큼의 버전이 있다. 나는 한지상과 박은태의 것만 들어봤다. 이중에서 한지상 버전을 더 좋아하는데, 한지상 버전은 나약한 인간의 것이다. 목소리는 흔들리고, 달콤하다. 호흡이 짧게 끊긴다. 언젠가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닥치자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잘 떨쳐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노래는 끝에 갈수록 더욱 견고해진다. 슬픔이 떠나기 때문이다. 노래에 너의 신념을 기쁘게 믿고 기대 살았던 나약한 인간이 마침내 너를 위해 단두대에 오르기까지 용감해지는 여정이 있다. 완벽하게 보이지 않는 노래는 그래서 더 간절해진다. 중간에 빅터역을 맡은 유빅이 소리를 지르는 데, 노래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이 마저도 이 노래를 하나로 이룬다.  


박은태의 노래는 조용하고 성스럽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였고, 준비했고, 알고 있었다. 이 죽음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는 더 안정적이고 아름답고 신적이다. 너를 위해 준비했고, 동시에 나의 죽음을 준비한, 인간을 초월한 인간의 노래. 박은태의 다른 노래로도 미뤄보아, 극을 해석하는데 배우가 갖고 있는 심성이 반영되는 것 같다(그것이 일관적이다). 박은태가 분노하는 예수의 겟세마네를 부르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노래를 부르기 전에 박은태라는 인간 자신을 이미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데스노트>의 김준수의 광기에 어린 L은 놀랍다. 독특한 발성과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닌 듯한 몸짓의 L은, 그가 얼마나 작품을 잘 해석해내고 있느냐의 문제를 판단하기 전에 예인으로서, 한낮 범인이 따라할 수 없는 '미친'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돌아가 <너의 꿈 속에서>는 가사가 아름다워서 눈물이 다 난다. 늘 같은 구간에서 눈이 찡해진다. <지금 이 순간>은 이 노래에 비하면 그야말로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너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너의 생각, 너의 신념, 너의 의지, 그 속의 '너'를 알아보는 나의 고백이 아름답다. 여기서 '나'는 '네'가 말해준 '미래'를 위해서 죽는다. 아직 오지 않았고, 불확실하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뤄질거라고 믿는 미래가 있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게 바로 너를 통해서 믿는 것은.  한 사람을 그토록 안다는 것은 바로 저런 의미겠지. 


노래를 듣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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