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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담


호텔 뷔페에서 일식코스로 바꾼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나도 가보지 않았거니와, 룸이 없고 일어나서 음식을 가져와야하는 불편함은 생각보다 큰거였다. 앉아서 나오는 코스를 받아보자니 그랬다. 이렇게 안락할수가 없다. 젓가락을 들어 회 몇점을 들어 오물거리면 될 일이었다. 뒤로 생일족자가 걸려있고, 생일회케익, 생일상이 차례대로 나왔다. 손이 자유로웠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 머리가 가뿐했고, 만족스러웠다. 놋그릇의 생일상에 엄마는 감동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밥이다. 엄마는 숙련된 솜씨의 미역국을 아마도, 20대 이후로 처음 받아보셨을 것이다. 찬은 소박했지만 하나하나 다 맛있었다. 회는 끊임없이 화려하고 두툼하고 맛있었고, 끝에 가서 나오는 매운탕도 맛있었고, 아. 갈비는 아주 별로였다.


회를 먹고 나와서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온가족이. 그건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다. 해질녘이었고, 어둡지 않았고 사람들이 많았지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붐볐다. 조용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일요일 저녁이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걸음이라서 그랬을지 모르겠다. 어떤 화랑에도 들어가 그림을 몇 점 보고 나왔다. 근처에서 밥을 먹고, 근처를 걷기만 했는데. 이상한 풍족함이었다. 호텔은 높기두 높지, 이런데 면세점이 있네. 하면서.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이 더 나았다. 사람이 많지 않았고, 우리는 이만치씩 떨어져서 서로의 시선에서 자유로왔다. 그날 엄마는 맛없는 포도를 한 박스 가져오셨고, 오늘로 그걸 다 먹었다. 평범하게 맛없는 포도에 겨우 익숙해질 때마다 비범하게 맛없는 포도가 나와서 맛없음을 계속 경신하는 날이었다. 어떤 날은 출근처럼 먹었다.  


#레베카


석이에게 '레베카'를 선물로 주었다. 석이가 레베카 노래를 부른지 만 2년만의 일이다. 좌석은 좋지 않았지만 석이는 대만족을 하고 12시에 집에 도착했다. 장장 세시간짜리 공연을 보고와서, 지금 바로 다시 한 번 더 보고싶다고 해서 나를 놀래켰다. 레베카 표를 다시 찾아보는데 여의치가 않다...아무래도 14만원짜리 표는 내게 좀 비싼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공연 내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레베카의 이름이 영원처럼 불리고, 공연 하는 내내 그 자리에 있지만 I아이, 나로 발음될 뿐인 이야기. 시라노와 비교를 부탁했더니 시라노가 뭐냐고 물어봤다. 홍광호가 어렴풋 기억날 뿐,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고. 

연휴 때 '헤드윅'을 보고싶다. 


#사진 인화


사진 정리를 할 참이다. 꽤 많겠지. 앨범도 사고, 사진도 뽑고. 여유가 있을 때 해야지. 어디보자. 혼자 간 대만부터, 가족여행의 대만, 최근의 오이타까지. 모두 화면에만 있다. 불러와서 만져야지.  

 

#템플스테이


양양에 처음 가보는 것 같다. 혹시 답사기간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도착하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런게 좀 두근거린다. 그럴지도 몰라서. 핸드폰을 반납한다고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 108배를 지치지 않고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박


국박에 가고싶다. 그곳에서 딱 열 점만. 열 개의 장소와 시간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작게 살아있는 조그마한 나의 현재를 주고싶다. 그것을 건네고 모든 것이 끊겨 죽어버린 예전의 얼굴을 하염없이 보고 싶다. 


#나를 재우기 위해, 매일

 

잘자라 우리 아가-로 시작되는 자장가를 매일 부르고, 이제는 앞뜰과 뒷동산에 어느정도의 바람이 부는가를 생각할 정도로 자장가를 생각한다. 앞으로 이 그림을 좀 그려보려고. 재밌는 작업일 것 같다. 잠을 잘 못잔다. 꿈을 많이 꾼다. 일어나면 몇 자를 적어두고, 헛헛하다. 내가 시작하려고 했던 한 시절이 끝나버린 것을 나는 슬퍼한다. '슬픔'이라는 게 세상에 있고,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 정확하게 그것이라고 생각한다.이걸 느낄 수 있다는 건 그 슬픈일이 내게서 아직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 멀어지자면, 슬픔도 그때에는 없다. 잔잔히 밀려오는 것들에 발끝부터 무릎으로, 모래가 붙어서 마르는 바지 밑단으로, 검은 안개와 이렇게 부신 햇살의 반복에 얼마나 있어야 할지 아직 가늠할 수 없다. 지금은 매일 다르게 층층 올라오는 바다를 좀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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