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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내면으로 다가가는 일과 그 사람의 자신이 알지 못하는 마음이 보여지는 일. 한 발자국, 한 허밍, 한 컷으로 존엄하다. 김민희와 홍상수의(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자기 변호나 변명으로 읽을 수만은 없다. (그것은 손가락일 뿐이다) 영희는 이곳에서 거의 신이다. 그녀는 자신들에 대한 세간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으며 그에 대해 할 말이 있다. 김민희는 '영희'의 이름을 빌려 혼낸다. 아니 영희가 '김민희'의 얼굴을 빌려 말한다. '가짜 주제에', '진짜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종 조용하고 나긋한 김민희가, 그런 말은 생각도 못할 것 같은 이가 한순간 목소리 높아지며 일갈하는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무섭다. 현실의 홍상수와 김민희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김민희-영희는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빌려 실제의 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그 둘이 하마터면 한 명으로 읽혀서, 화면 너머에 있는 이에게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다. '영희'의 일갈은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세간의 이야기가 영희의 입을 빌려 나온다. '자기 얘기 좀 그만하시라구요' 그러나 홍상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건 그냥 내 얘기가 아니거든. 나는 다른 얘기도 할 수 있거든. 예술가와 예술가 아닌 사람의 차이이려나. 누구나 자기 얘기를 글로 영화로 쓰고 싶다. 그리고 대부분 그냥 자기 얘기로 끝난다.
어느 누구도, 어떤 때에도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이 있다. 그건 쉽게 볼 수 있지 않고 보여지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은 그런 게 있다고 상상할 수도 없다. 이들에게 그건 아마 이런 모습일거야. 하고 추측해가는 게 이 영화의 엔딩이다. 제목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희가 한 번도 없던 시간. 그리고 누구도 보지 못한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무렵 거의, 영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있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함부로 보여지지 않지만 그러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안쪽이 있다고. 제목으로 가는 길, 내내 그녀는 존엄하고 존엄한 카메라의 시선을 받는다. 이것이 세간의 지탄을 받는 둘의 사랑과는 상관없는 일이나, 그 사랑으로 드러나게 된 존엄이라라면 나는 그런 사랑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명수(정재영)과 도희(박예주)의 관계가 단편적으로 그려지는 점이 아쉽다. 스테레오다. 남자는 무능력하고, 여자가 생활을 꾸리며 여자가 남자를 닥달한다. 남자는 게으르다. 서로의 내면을 알아보지 못하는 관계에 대한 피상적인 묘사가 아쉬운 가운데, 이 정도면 됐지뭘 하고 지나가는 시나리오에 정재영은 사람이 이렇게 구겨지고 초라해져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 사랑이 아니라 생활에 의해 살아가는 연인들에 대한 묘사는 나이보다 '지친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렇지. 힘을 자꾸 내야하지. 그런 관계.
영희(김민희)가 '매력적'으로 보인다며 그의 지인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한다. 여기서 짚어내는 건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인한 마음 고생'인데, 달리 말하면 그 사랑이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을까. 홍상수는 너무 몰입했고 자기가 자랑스럽다. 나는 영희(김민희)의 내면을 발견했어!! 알아차렸다구!! 그게 아니더라도 '영희'는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감독이 영희에게 읽어 줄 책을 가져오라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를 시킨다. 감독은 주변에 사람이 있다.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스태프를 시켜서 책을 가져오라고 말할 수 있다. 연인이었던 이에게 한 구절 읽어주기 위해서. '영희'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다만 그 책을 받아들고, 그 감독의 영화에 출현한다. 이걸 어떻게 영화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나. 지독하게 현실이다.
이렇게 나 자체인 이야기를 쓰는 일은 (괴로우며)단조롭다. 그러나 감독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지 않고서는,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털어버려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털린 이야기는 먼지가 되기 마련인데. 햇빛에 빛나는 먼지라니.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주라도 엿보는 듯한 공간에 관객을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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