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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에버랜드의 잠

_봄밤 2016. 11. 14. 23:29





에버랜드는 낡고 헤지는 것을 버릴 수 없어 움켜쥐고 있는 거인 같았다. 그는 십수년간 일정한 행복을 짓느라 지친 것 같다. 원래라면 멋진 옷을 입고 춤을 춰야 하는데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쥐고 있다. 바지춤은 왜 흘러내리는가. 중력 때문이다. 중력을 이길 수 없는 화려한 여러가지 사인의 바지의 무거움과, 그 안에 가려진 다리의 앙상함과, 그걸 쥐어올리는 손목의 쇠약함 때문이다. 이 세계도 지고 있다. 보았지만 못본 척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은 것처럼 거인의 표정은 너무 멀어 볼 수 없다. 멋진 브랜드의 로고가 꼼꼼히 자수 놓아졌지만 곧 벗겨지고 말 이 바지는 데님의 새로우면서도, 고루한 냄새가 풍겼다. 시작된 이상 멈출 수 없는 롤러코스터의 상승과 하강, 계산된 부침은 흘러내리고, 다시 추켜 올리는 거인의 지루한 반복을 빗댄 것 같고, 그 외에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놀이기구를 탄 후에는 약속처럼 피곤이 몰려 있었고. 이 피곤으로 피곤하지 않을 이는 과연 있을 것인가 물어본다면 아무래도 여기 에버랜드에는 없는 것 같다. 벗겨지는 바지의 주인을 자본의 낯이라고도 생각해 보지만 안하는게 나았을 말 같다. 적막을 견딜 수 없는 꿈속에서는 몇 가지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곳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이들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더러운 것을 치우지만 더러워져서는 안된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해가 몰리기 시작하자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 놀이기구의 그늘은 더 음산해졌다. 덧칠에 두꺼워진 가로등에 축제를 알리는 깃대가 흔들리고,  십 년 전의 페스티발을 여전히 그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광장에서 헤맬 때가 있었는데 그곳은 한 눈에 다 보였고, 도저히 길을 잃을 수 없는 구조였다. 몇 타임을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 삼층 호박이 왜인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고, 여기 가장 꼭대기에서 팔을 놀리는 댄서들은 이십년 전에도 흰색 분칠로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나는 '세라'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라의 시작을 이렇게 썼다. '어렸을 적 찍었던 페스티벌의 사진에 내 어깨를 두르고 예쁘게 웃는 댄서 언니가 있었다. 그 얼굴을 기억한다. 이십 년 후의 내 얼굴이 되었다.' 이건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이야기었다. 나는 다음으로 입을 뗄 수 없었다. 이후에 세라의 갈등과 고조를 만들어 보았는데, 말자. 세라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이야기였다. 

덩크슛을 하는 곰은 오늘도 덩크슛을 쏘았다. 이 문장에서 이상한 점은 없지만 분명히 이상하다. 그 곰의 인생은 덩크슛을 하기로 약속되었다. 그 곰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운석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에야, 그 곰이 농구공과 이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곰뿐인가. 우리는 잠시 우리를 망각하려고 이곳에 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지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깔깔거렸다. 그게 좋은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촌극이 벌어지는 오래된 왕국을 방문하는 것을 소박한 일탈로 삼으며 소중한 연차를 썼다. 덕분에 오래 전 일기를 기억했다. 

놀이공원에 갔던 유치원 소풍은 일곱살 인생에서 가장 멀리 차를 타고 간 날이었다. 멀미를 심하게 했다. 그때의 괴로움은 흐릿해졌는데 이 멀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어린 몸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햇빛에 가여운 표정으로 있다. 사진으로 기억한다. 춤을 추라는 곳에서 춤을 추고 기뻐야 했지만 그곳에서 내가 한 것은 토하기, 낮은 계단에 앉아있기였다. 엄마는 얼마나 혼이 났을까. 자신도 즐겁지 않고 자신의 아이도 즐겁지 않은 축제의 자리에 와서 먼 곳에서 우아아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너는 키미테를 부러워 했던 어린날의 귀밑을 점찍어 보여주었다. 그 자리는 어리지 않았지만 다시 짚어 보이기에 충분히 그 자리였다. 여기에 그 동그란 걸 붙이는게 부러웠었어. 라고 말했다. 어릴 적 놀이공원이란, 토하기나 키미테를 부러워함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면 아까 낮에 봤던 수많은 아이들의 환한 미소 같은 것은 놀이공원과 등식으로 생각되는 미소라는 이미지일 뿐,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생각하지 못한 다른 것이 있을 거다. 이건 아주 통쾌한 일. 

줄을 서서 모여든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하나도 타지 않고 에버랜드에서 잠을 잔다면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이 끝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세라가 행복을 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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