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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나온 곳에는 그런 말이 있다. 나만 알아챌 수 있는 부끄러움과 나만이 모르는 척 지나갈 수 있는 부끄러움이.
2. 먹고자 하기를, 먹고자 하는 일이 많기를. 먹고 싶은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기를. 탐욕을 너에게는 거짓말 하지 않기를.
3. 작년의 어느 날과 비교했을 때. 나는 마침내 의자에 앉아서 이 창을 바라볼 수도 있게도 되었다. 한 문장과 한 문장을 만들었다. 하나 하고 둘이라고 생각의 순서를 붙여주었다.
4. 매일 쓸 것이다.
5. 이곳에서 몇 년 살았고, 이제 강이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간다. 이 동네는 참으로 별 볼일 없는 곳이었다. 매양 부서지는 빌라와 건너편의 꺼지지 않는 편의점 불빛, 인구에 비해 밀집한 미용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군데도 맘놓고 다닐 곳이 없는 지경은 내게 준 것이 없었지만 이 강만큼은 좋았다. 출퇴근길 빛에 젖는 강을 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요 며칠은 강가에 쌓인 흰 눈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도 가는 눈으로 몰래 보았다. 일부러 강가에 내려가 걸었다. 강바람은 몹시 추워 이리로 온 것을 곧 후회했다. 물을 건널 때가 되어 돌담 앞에 도착했다. 늘 다리 위에서 저 아래 물이 있다는 것만 알았는데 돌담에 서자 물이 소리를 굉장한 소리와 속도로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물과 물이 부딪히고 물이 제 없던 자리에 가느라 공기를 흐트러뜨리고 저 돌담을 부수며 건너느라 나는 소리였다. 목도리에 얼굴을 가만히 품고 몇 초 있었다. 정말 굉장하지.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은. 이 소리 앞에 있다는 것은. 물은 쉬지도 않고 소리를 냈다. 누워서 잠을 자는 중에도 멈추지 않겠지. 가까운 사람의 가슴이 생각났다. 더 가까이 가자면, 이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게 무서워서 입을 다물었었다. 그 마음이 생각났다. 볼이 맵도록 추웠고, '경외'라는 말을 속으로 생각했다. 아프지 않을 정도만 서 있다가 자리를 떴다.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내가 이렇게 살아 있어야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이사를 한다는 얘기였다. 산 자리를 옮긴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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