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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내가 알 수 없는 노래

_봄밤 2016. 10. 24. 18:13





녹색이 가득한 곳에 해가 지고 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공연이 중반쯤, 지금은 좀 시들해진 락페에서였다. 조용하게 울리는 노래가 한 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나는 지루해지고 있었다. 끝났으면, 싶은 공연은 영원히 계속 될 것처럼 지치지 않았다. 어디로 퍼져가는지 모를 노래는 그 좋은 가사조차 들리지 않고, 속삭이듯 곁에서 들렸던 파스텔 톤의 목소리가 이제 그만 집에 가겠다고 말 했으면 했다. 


그러기 전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노래에는 영원히 '라이브'가 필요하지 않다. 어떤 노래는 그 노래를 들었던 MP3, 스트리밍의 날들로 완성된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원작자와 내가 동시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일은 아주 옛날의 것이 되었다. 


이 노래는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시작이 좋다. 그건 결국 한 사랑을 기억하는 자세이기도 한데, 그걸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쓴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단락 외에 가사가 잘 안들어오는 걸 보면 후렴이 흐지부지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저 기억하자고 되뇌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뮤직비디오는 결혼하는 여자가 예전에 만났던 남자, 사진사로 함께 만난다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주제지만 안재홍이 황승언을 바라보며 웃어보라도 짓는 손모양은 누가 재현할 수 없을 듯 아프다. '너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네' 라고 할 때 드럼이 한 박자 떨어져 무거운 걸음으로 따라오는 것도 자주 듣는 이유다. 이 작은 이어폰으로 충분하다. 한 번에 알아챈 것 아니고, 여러 겹에 걸쳐 알게 된 사실이다. 노래에는 나의 시간이 담겨, 나만이 기억하는 노래로 다듬어진다. 


내게는 이런 일이 소중하다. 감색과 회갈색 정장을 들고 어떤 것을 입으면 좋을지 물었던 아침. 고민하던 너는 이런 저런 노래를 들으며 맘보라도 추는 듯 보였는데. 너를 지켜온 언젠가의 노래를 곁에서 나도 듣게 되었다. 그건 나도 아는 노래였지만, 내가 알 수 없는 노래였다. 천 장도 넘어보이는 CD, 네가 트랙마다 감긴 노래를 듣고 그 가사를 읽어갔던 밤, 노래에 잠겨 말하지 않았던 날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 


언젠가 <나의 트랙>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면, 2012, 2013년, 한 해의 노래와 계절의 노래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노래에는 온도와, 풍경과, 어떤 사람과, 냄새와, 기분이 함께 있다. 우리는 결국 그 노래의 좋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 시간이 어떻게 감겨 있는지, 지금도 듣고 또 다시 들으며 노래의 어디가 낡아 가는지를 나누는 일일 것이다. 가령, 노래가 나오고 '우리가 본 영화가 11편 쯤 되는 것 같아. 1년을 만나가는데 그러면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 하고 네 볼을 내 얼굴께로 가져올 때. 나는 이렇게 부드러운 것으로 이뤄진 사람이 어떻게 저 모나고 높은 건물에 들어가 하루를 보낼 수 있는걸까 생각한다. 여길 지나갔던 노래는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의 트랙>이라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횡단보도에서 먼 곳의 불이 바뀌는 것을 기다려 우리의 말이 사라질 때마다 너는 나얼이 내 마음속의 몇 등이냐고 묻는다. 그만 자리를 마련해 줘야겠다. 등수으로 매기는 것은 아니고, 신의 노래와 인간의 노래라는 방이라면 어울릴 것 같다. 비가 왔고, 겨울인 듯 쌀쌀하다. <벌써 일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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